불신이 팽배한 사회는 국가적으로 큰 불행이다. 국민이 정부와 공직자를 신뢰하지 못하고, 정치인들은 서로 헐뜯기에 바쁘며, 국가지도자와 언론은 걸핏하면 네탓 공방을 벌인다. 근로자와 경영진은 대립하고,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벽이 있으며, 부모 자식간에도 못 믿을 처지라면, 이는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도 설마했는데, 한국사회가 총체적 불신의 늪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는 매우 충격적이다.
KDI는 사회적 자본인 국민의 신뢰도 조사를 위해 1500명을 개별면담했다고 한다. 불신(0점)과 신뢰(10점)의 정도를 계량화해 본 결과, 국정을 이끌어야 할 국회(3.0)·정당(3.3)·정부(3.3)는 처음 본 사람(4.0)에 대한 신뢰도보다 낮은 평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국가의 법질서와 사회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중심기관인 검찰(4.2)·법원(4.3)·경찰(4.5)에 대해서도 그다지 믿음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관계에서 신뢰는 사회적 협력과 거래를 촉진시키고 경제성장 및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다. 그런데 사회지도층인 정치권과 국가 중추기관부터 국민의 신망을 얻지 못한다면 나라의 장래는 결코 밝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불신풍조가 만연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지도자들의 격조 없는 언행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욕지거리와 막말과 폭력이 난무하고, 기강과 질서와 예의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데도 나라가 돌아가는 게 신통할 지경이다. 신뢰의 복원은 그래서 한국사회에 떨어진 발등의 불이다. 대통령부터 발벗고 나서야 한다. 사회지도층은 책무를 다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에 모범을 보여야 잃어버린 믿음을 되찾을 수 있다. 선진사회 진입을 위해, 더 늦기 전에 신뢰회복 범국민운동이라도 벌여 국가의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
2006-12-2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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