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발해의 금화/이용원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발해의 금화/이용원 수석논설위원

입력 2006-10-16 00:00
수정 2006-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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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를 세운 대조영이 건국 기념으로 만들었다는 금화 다섯 점이 공개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화폐에는 ‘발해통보’‘천통8년’이라는 글자를 각각 새겼다고 한다. 금화를 공개한 모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천통(天統)’은 대조영이 정한 연호이므로, 화폐를 주조한 해인 천통8년은 서기 705년이 된다. 과연 705년에 대조영은 발해라는 국호를 썼을까?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해는 698년이다. 고구려가 당나라에 망한 뒤 30년만에 그 유민들을 이끌고 옛 고구려 중심지에 나라를 세운 것이다. 대조영은 나라이름을 처음 진(震 또는 振)으로 지었다고 중국 사서에 기록돼 있다. 그러다 당이 713년 사신을 진의 조정에 보내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임명한 뒤로, 발해라는 국명이 자연스레 자리잡았다는 것이 중국측 기록이다(발해의 임금은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를 고려왕이라고 일컬었다). 따라서 705년에 대조영이 발해라는 국호를 사용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아울러 대조영의 건국 당시 영토를 보아도 발해라는 이름과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발해’는 본디 중국 랴오둥반도와 산둥반도에 둘러싸인 바다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반면 대조영이 당나라 추격군을 뿌리치고 멀찌감치 이동해 나라를 세운 동모산 일대는 발해와는 수천리 떨어진 지역이다. 그런데도 대조영이 지리적·역사적 연관성이 없는 발해를 취해 나라이름을 삼았다는 것은, 기록상에 없거니와 논리적으로도 믿기 힘든 주장이다.

‘천통’에 관해서도 정말 대조영이 사용한 연호인지를 두고 사학계에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공식 사서에서는 대조영을 이은 2대 무왕에 이르러서야 독자적 연호인 ‘인안(仁安)’을 사용한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천통’이라는 연호는 다만 발해 왕가의 후손이라는 태씨의 족보에 기록돼 있을 뿐이다. 또 무왕이후 발해왕들은 대대로 연호를 사용했지만 ‘천통’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통이 발해의 연호라는 주장도 근거는 미약하다.

이번 공개된 금화가 발해의 화폐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 사실이 선뜻 믿기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2006-10-1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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