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에] 나눔의 의미/정정숙 천도교 중앙본부 교화관장

[토요일 아침에] 나눔의 의미/정정숙 천도교 중앙본부 교화관장

입력 2006-09-30 00:00
수정 2006-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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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지나면 한가위다. 중추가절(仲秋佳節)!

중(仲)자는 사람 인(人)에 가운데 중(中)자를 합친 글자로 형과 아우의 가운데 즉 둘째라는 ‘버금’의 뜻이 있으며 또한 ‘사람과 사람사이를 중개해 준다.’는 뜻이 있다 따라서 중매(仲媒)라고 쓸 때에도 중(仲)자가 사용된다.

추석을 중추가절이라고 하는데 바로 추석의 의미는 중(仲)자에 있는 것 같다. 가을의 가운데라는 뜻보다는 가을의 풍요로움을 맞이하여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는 뜻이 더 큰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풍요를 나누어 줌으로써 그 사람과 나를 중개해 준다는 뜻!

조상들의 지혜가 묻어나는 명칭이다. 조상들의 뜻에 따라 추석을 맞이하여 우리의 이웃들에게 눈을 돌려보자. 매년 추석이 다가오면 여러 곳에서 불우이웃돕기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방문하는 모습들이 영상매체나 일간지에 많이 소개되어 왔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였는지 점차로 추석 때 보도되는 이런 아름다운 모습들이 여러 매체들로부터 사라져 갔다. 그리고 연신 보도되는 것이라고는 교통문제로 귀성객들의 움직임에 관한 것들이다. 분명히 어디선가 누군가에 의하여 추석을 맞이하여 나눔의 아름다운 모습들이 있을 터인데 말이다.

그런데 나눔에 대한 모습은 12월에 시끌벅적하게 일어난다. 성탄과 연말을 맞이하여 연신 ‘불우이웃에게 베풀자’는 슬로건이 길거리에 나붙고 또한 시청각 매체나 일간지에도 소개가 많이 된다.

어쩌면 우리의 조상들이 물려준 중추가절이 내포하고 있는 나눔에 대한 미학을 성탄이라는 바깥에서 들어온 풍습에 의하여 그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예부터 한민족의 정서에는 ‘우리’라는 ‘함께 한다.’는 의미가 녹아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우리엄마, 우리동네 등 우리라는 단어는 항상 나와 함께 다니는 공동체적인 단어였다.

나는 항상 우리라는 테두리 속에서 존재하였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우리’라는 단어보다는 ‘내가’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고 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일상생활과 가치관의 변화를 엿보게 한다. 함께 한다는 공동체적인 의미보다는 개인주의가 더욱 뚜렷해진 것이다. 그렇게 되다보니 남보다는 나를 먼저 챙기게 되고 남보다는 내가 더 잘 살아야 되고 남보다는 내가 더 등등….

항상 ‘우리’는 ‘내가’ 보다 뒷줄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조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자리매김을 잘하는 조직일수록 오래가고 성장 발전하게 된다. 즉 중(仲) 자의 의미를 잘 알고 사람과 사람사이를 중개해 나갈 때 그 사회는 수명이 길어지고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나눔의 형태는 여러가지이다.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에게는 정신적으로 지탱해 줄 수 있는 힘을 나누어 줄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힘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경제적 힘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다.

또는 육체적인 봉사를 통하여 나눔을 행할 수도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할 수 있는 나눔의 형태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산재해 있다. 내가 나눔으로 인하여 그 나눔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가을 추석을 맞이하여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 이웃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우리는 더욱 큰 행복과 소중함을 얻게 될 것이다. 나눔이라는 의미는 바로 나를 존재케 하고 나를 지탱케 해주는 힘이 된다.

중추가절을 맞이하여 황금빛 들판을 바라보면서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중(仲)자에 대한 나눔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우리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보자.



정정숙 천도교 중앙본부 교화관장
2006-09-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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