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위기´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사회에서는 물론, 활자문화의 최신유행을 반영해야 할 신문사에서조차 외면받는 게 인문학이라 솔깃하다. 그렇다 해서 선뜻 손 내밀어 붙잡기도 조심스럽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어떤 이슈가 제기됐을 때 온갖 반론과 공격이 이어지면 여론도 그런 쪽으로 꺾여 간다. 현 정부가 제시했던 4대 개혁입법이 대표적인 예다.‘대한민국 정체성론’의 덫에 걸려 무력해졌지만, 딱 하나 예외가 있었다.‘사학법’이다. 전교조 교사들이 사학을 접수한다는 선동에도 불구하고 사학법 개정에 대한 여론조사는 줄곧 압도적인 지지였다. 왜? 바로 체험의 힘이다. 사학재단의 중·고등학교를 거친 보통사람들은 ‘그 때 그 시절 그 경험’을 온 몸에다 새기고 있고 아이들도 보내야 한다.
‘인문학의 위기’를 선뜻 손 내밀어 붙잡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인문학을 전공한 대학생은 도대체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고 배운 것을 어디에 써먹고 있을까. 사학법 반대론만큼이나 위기론이 와닿지 않는 것은 가슴을 울리는 자기 성찰이 보이지 않아서다. 위기론이 계속되면 교육부 같은 곳에서 돈을 내놔 학자나 연구소나 대학을 지원할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은? 교육부총리 산하에 인문학위원회를 만들고, 인문학진흥기금을 조성해서 인문학자에 대대적인 지원을 한다면 빈사상태라던 인문학 열기가 들불처럼 일어날까.
인문학이 쓸모없지만은 않다는 희망은 이번 위기론에서 아주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그동안 경쟁을 통한 도태라는 1차원적 시장논리만이 한국사회의 과제인 양 주장하던 매체들이 시장논리 때문에 망해간다는 인문학자들의 절규만큼은 앞다퉈 다룬다는 사실이다. 안 팔리는 학문, 망하는 게 당연하다 할 법도 한 데 그렇다. 맞다. 한 시절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영어 원서처럼, 그럴싸한 액세서리로서의 인문학은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쓸 만하다. 그렇지 않다고 하려면, 인문학자들이 먼저 행동으로 입증해야 한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cho1904@seoul.co.kr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어떤 이슈가 제기됐을 때 온갖 반론과 공격이 이어지면 여론도 그런 쪽으로 꺾여 간다. 현 정부가 제시했던 4대 개혁입법이 대표적인 예다.‘대한민국 정체성론’의 덫에 걸려 무력해졌지만, 딱 하나 예외가 있었다.‘사학법’이다. 전교조 교사들이 사학을 접수한다는 선동에도 불구하고 사학법 개정에 대한 여론조사는 줄곧 압도적인 지지였다. 왜? 바로 체험의 힘이다. 사학재단의 중·고등학교를 거친 보통사람들은 ‘그 때 그 시절 그 경험’을 온 몸에다 새기고 있고 아이들도 보내야 한다.
‘인문학의 위기’를 선뜻 손 내밀어 붙잡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인문학을 전공한 대학생은 도대체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고 배운 것을 어디에 써먹고 있을까. 사학법 반대론만큼이나 위기론이 와닿지 않는 것은 가슴을 울리는 자기 성찰이 보이지 않아서다. 위기론이 계속되면 교육부 같은 곳에서 돈을 내놔 학자나 연구소나 대학을 지원할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은? 교육부총리 산하에 인문학위원회를 만들고, 인문학진흥기금을 조성해서 인문학자에 대대적인 지원을 한다면 빈사상태라던 인문학 열기가 들불처럼 일어날까.
인문학이 쓸모없지만은 않다는 희망은 이번 위기론에서 아주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그동안 경쟁을 통한 도태라는 1차원적 시장논리만이 한국사회의 과제인 양 주장하던 매체들이 시장논리 때문에 망해간다는 인문학자들의 절규만큼은 앞다퉈 다룬다는 사실이다. 안 팔리는 학문, 망하는 게 당연하다 할 법도 한 데 그렇다. 맞다. 한 시절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영어 원서처럼, 그럴싸한 액세서리로서의 인문학은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쓸 만하다. 그렇지 않다고 하려면, 인문학자들이 먼저 행동으로 입증해야 한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cho1904@seoul.co.kr
2006-09-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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