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4개국을 순방 중인 한명숙 총리가 엊그제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를 만나 외규장각 도서 문제에 관해 몇가지 합의를 이루었다. 오는 9월 서울에서 외규장각 도서 전시회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전시회를 체계적·정례적으로 열겠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해당 도서를 디지털화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프랑스 측이 진일보한 태도를 보였으며, 외규장각 도서가 140년만에 우리 땅에 돌아와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은 적잖은 성과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같은 합의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며 외규장각 도서 반환이라는 본질적 문제의 해결에 자칫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우려한다. 우리 국민이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프랑스 측에 요구하는 까닭은, 그 서책들을 진열장 안에 전시하고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프랑스 측이 소장한 유일본 63권의 내용을 파악해 연구하는 작업 또한 중요한 건 분명하지만 이는 시급한 일이 아니다. 우리 국민이 원하는 것은, 프랑스가 제국주의 팽창 시기에 약탈해 간 문화재를 이제 원주인인 우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뿐이다.
1992년 이래 한국과 프랑스는 다양한 민·관 채널을 통해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를 협의해 왔다. 우리에게 고속철을 팔 무렵 프랑스 측은 즉각 반환이라도 할 것처럼 굴다가 거래가 끝나자마자 갖은 핑계로 거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의 행태로 볼 때 프랑스 정부가 이번에 제의한 외규장각 도서의 ‘정례적이고 장기적인’ 한국 전시가 사실상 반환을 거부하는 의도를 담은 건 아닌지 우리로서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과 프랑스는 서로가 주요 무역 상대국이고, 거래 대상에는 국민적 동의를 필요로 하는 대형사업이 적잖게 있다. 프랑스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로 한국민의 신뢰를 잃어 결국 소탐대실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2006-06-1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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