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폭력의 그늘,무엇이 남는가/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 교수

[열린세상] 폭력의 그늘,무엇이 남는가/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 교수

입력 2006-03-18 00:00
수정 2006-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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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납치되었던 KBS 용태영 기자가 무사히 귀환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온 국민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2의 김선일 사건으로 비화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오고 있었던 터였다. 성공적 협상에 나섰던 한국 외교관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테러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심리적 충격과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폭력적 행위라고 규정할 때, 테러의 역사는 아마도 인류 역사만큼의 오랜 기록일 것이다. 최근 자주 사용되는 테러방법은 주로 자살폭탄공격, 하이재킹, 그리고 인질납치 등이다. 정치적 갈등이 첨예한 중동지역에서 테러는 일상사가 되어 있다. 특히 종교적 차이로 인한 정치적 갈등일 때, 테러라는 폭력적 방법에 쉽게 도착(倒錯)된다. 테러를 감행하는 측에 있어 죽음은 순교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테러는 이미 중요한 국제정치적 이슈다. 탈냉전기 국제정치 현안의 중요도와 대응방법을 결정하는 소위 ‘현안 결정자’(agenda-setter)의 역할은 미국이 맡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테러행위는 미국의 국가안보에 가장 심각한 위협요소다.9·11 테러 이후 명백해진 안보관이다. 냉전기 미국의 국가목표가 봉쇄(containment)였다면 탈냉전기 국가목표는 테러 방지다. 이에 따라 주요 강대국들의 외교안보 목표도 미국을 좇아 테러방지에 두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핵심 현안으로 떠오른 테러가 쉽게 수그러들 가능성은 극히 희박해 보인다.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의 논제에 철학적 합의를 이룰 수 없는 이상, 테러를 행하는 측과 이에 대응하려는 측 사이의 간극은 메워지지 않고 영원한 평행선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인간 지성적 능력의 한계, 인간과 사회의 불완전성이 오늘날 테러문제로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더욱이 오늘날 미국이 테러방지에 대응하는 방법 또한 군사력이라는 폭력성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으면서 미궁에 빠지게 되는 폭력 악순환성의 전례를 보여준다.

테러는 테러를 가하는 측이 던지는 일종의 대화 방법이다. 문제는 대화의 방식이 너무 일방적이라는 점과 단기간에 세간의 주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환각 때문에 폭력사용이라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는 점이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만을 퍼붓듯 이야기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자기 논리의 난폭한 표현일 뿐이다.

이것은 사회 내 갈등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뭔가 보여주지 않으면 상대가 나의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폭력수단의 사용을 유혹한다. 유사한 폭력적 행동이 이전에 일정정도 효과를 가져왔다고 믿는 인식적 관성이 폭력 행위를 반복시킨다. 폭력성을 띤 언술도 마찬가지다. 사회 내부에서나 국제관계에서 폭력이 그치지 않고 하나의 관습처럼 전승되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상대방의 의사와 행동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난폭한 어조나 폭력만이 유일한 수단이 아니다. 꾸준한 설득을 통한 방도도 있고, 심금을 울리는 어사(語辭)나 눈물 한 방울에 비춰지는 감성도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들을 학습하고 있는 중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과제다. 이럴 때, 비폭력 평화운동을 통해 위대한 진보를 이루었던 간디나 킹 목사의 발자취를 진지하게 재조명해야 한다.

폭력이 단기적 효과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근원적 문제 해결이나 장기적 목표 달성에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피는 더 많은 피를, 폭력은 더 거대한 폭력을 부른다는 사실만이 명백한 진리다.

영화 ‘뮌헨’에서 주인공은 “테러를 주도한 자를 제거하고 나면 더 악랄한 자들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라고 되뇌며 폭력적 보복행위의 허탈감을 토해낸다. 그 절망어린 목소리가 더 큰 울림으로 남는다. 그것은 이 시대 우리들의 고뇌나 다름없다.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 교수
2006-03-1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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