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아 추계예술대 영상문화학부 교수·박물관경영학 박사
대한민국 황제는 황태자에게 해외 불법 유출 문화재의 목록을 건네면서 이들 문화재의 반환이 그가 앞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임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다. 중반 정도에는 대영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기사 진표리 진찬의궤’의 자발적인 반환을 위해 영국에서 윌리엄 왕자가 방한하여 상호양해각서를 교환하기도 한다. 이 의궤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외규장각 도서와 함께 불법으로 가져간 7000여권 가운데 하나로서,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영국의 치즈 상인에게 10파운드에 매각되어 현재는 제3의 장소인 대영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의궤로 손꼽히는 이 고문서는 유일본으로서 저주지로 만든 일반 의궤와는 달리 최고급 초주지로 제작된 외규장각 도서와 같은 어람용 도서이다.1941년부터 엘긴 마블스라고도 불리는 그리스 최고의 문화유산 ‘파르테논 마블스’의 반환 요청을 시종일관 거부하고 있는 영국 정부가 ‘기사 진표리 진찬의궤’를 자발적으로 반환하다니…. 실로 꿈같은 일이 이 드라마에선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외규장각 도서반환 협상이 프랑스와 재개되고 있다.1993년 이래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진행되어 온 이 협상은 정부의 협상력, 전문가, 선행연구 등의 부재로 결국 ‘등가교환’이라는 결말을 낸 채 여전히 양국간에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문화재 반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문화주권에 대한 ‘정부의 의지’이다.
현재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의 환수 작업에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국 정부는 작년까지 5만여점을 반환받는 결실을 거두었다. 중국정부의 문화재 되찾기는 다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는 중국인 수집가들이 자신의 본토에서 열리는 경매뿐만 아니라 해외 경매시장에 참여해서 직접 고미술품을 수집한다.
둘째 중국정부가 몇 해 전 ‘문화재보호계획’을 발표하면서 불법 반출된 문화재의 반환을 각국에 요구하는 한편 미국정부에는 모든 중국 고미술품의 수입에 대해 규제를 취해 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이와 함께 중국의 시민단체 ‘중국문화재반환운동본부’도 아편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이 패망한 시기인 1840∼1945년 사이에 약탈된 문화재의 반환 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문화재반환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비단 중국만이 아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그동안 밀반출된 작품의 반환을 꾸준히 요청해왔다.
최근 이 미술관은 그리스 화가 유프로니오스의 작품이 그려진 2500년 된 도자기를 비롯, 소장품 20여점을 반환하겠다는 입장을 이탈리아 문화부에 전달했다. 앞의 사례처럼, 문화재 반환은 정부, 컬렉터, 시민단체, 해외박물관 등의 긴밀한 협조하에 이루어져야만 그 성과를 담보할 수 있다. 현재 구한말 불법적으로 도쿄대로 반출된 ‘조선왕조실록’의 반환이 논의되고 있다.
혹자에게는 문화재 반환이 오늘날과 같은 문화 다양성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문화재반환에 대한 발언권조차 포기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보아 추계예술대 영상문화학부 교수·박물관경영학 박사
2006-03-0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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