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법 운영 및 행정시스템이 첨단 정보통신기술인 휴대전화 위치추적시스템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아버지의 자살예고 전화를 받은 딸이 행정기관에 위치추적을 의뢰했으나 경찰, 소방서, 검찰이 법 규정을 들어 손을 놓는 바람에 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행정기관은 법 규정상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지만 융통성 없는 법 운용이란 비난을 면키 어렵다.
부산에 사는 정모씨는 사업에 실패한 뒤 비관해오던 아버지로부터 “먼저 떠난다. 잘 살라.”는 전화를 받고 경찰에 위치추적을 의뢰했으나 검찰이 통신비밀보호법상 위치추적은 수사, 형집행 등 범죄와 관련됐을 경우에만 할 수 있다며 거절하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정씨는 소방본부에도 도움을 요청했으나 자살은 긴급구난 요건에 해당되지 않아 위치추적을 할 수 없다는 답변에 가슴을 쳐야 했다.
행정기관으로선 당연히 법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이 관련된 사안에는 신축적으로 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검찰과 소방당국은 긴급통신조회요건, 긴급구난요건 등에 해당되지 않아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구구한 변명으로만 들린다. 법 규정에 해당되건 안 되건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결된 위급한 상황에서는 사람을 살려놓고 보는 것이 순서이자 도리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모든 상황을 법에 담을 수는 없다. 특히 소방당국은 위치정보이용법에는 위험상황이 발생, 직계가족이 위치추적을 요청했을 경우에는 응하도록 돼 있는데도 이를 외면했다. 정작 통신비밀보호법이 엄격히 적용돼야 할 곳은 도·감청 등의 우려가 있는 국가정보원, 기무사 등 권력기관일 것이다.
2006-01-0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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