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느린 동네/임태순 논설위원

[길섶에서] 느린 동네/임태순 논설위원

임태순 기자
입력 2006-01-05 00:00
수정 2006-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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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봉사단체 회원과 달동네를 둘러봤다. 달동네는 홍릉에서 전농동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었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다 쓰러져 갈 것 같은 한옥 몇채가 눈에 들어왔다. 중학교 시절 등·하굣길로 이용한 낯익은 길이었다. 학창 시절 번듯했던 한옥촌은 30여년의 세월속에 남루하고 초라해졌다. 주위에 위풍당당하게 늘어선 아파트의 기세에 눌려 더욱 왜소해 보였다.

삐걱거리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할머니가 문간방에서 ‘누가 왔냐’며 고개를 내민다.87세의 고령이었지만 정정했다. 문간방 입구에 쳐놓은 비닐 구멍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기른 아들이 있었지만 생모(生母)를 찾게 되자 떠나갔다고 한다. 딸은 생활이 어려워 서로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봉사단체 회원은 “재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는 달동네엔 더 이상 갈 곳 없는 노인들만 남아 있다.”면서 “그래서 동네가 참 느리다는 인상을 받는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연탄이 배달되면 가스에 중독되지 않게 잘 가세요.” 하자 “연탄가스에 중독돼 소리없이 죽었으면 원이 없겠어.” 한다. 이러다 느린 동네는 죽은 동네가 되는 건 아닌지.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2006-01-0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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