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초등학교 영어 강의’에 관한 단상/이용원 논설위원

[서울광장] ‘초등학교 영어 강의’에 관한 단상/이용원 논설위원

입력 2005-10-29 00:00
수정 2005-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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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인적자원부가 지난 20일 ‘향후 5년간(2006∼2010년)의 국가 인적자원 개발 기본계획안’을 공표하면서 경제특구와 국제자유도시의 초·중·고에서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영어몰입식 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영어를 공용어로 추진한다는 의지도 명확히 했다. 현재 경제특구는 인천, 부산·진해, 광양 등 3곳이고 국제자유도시는 제주도 한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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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원 수석 논설위원
이용원 수석 논설위원
이같은 발표가 나오자 초등학교 영어 강의에 대한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맞섰다. 찬성하는 쪽은 영어를 배우고자 유학까지 가는 마당에 일찌감치 학교에서 영어로 수업하면 잘 된 거 아니냐고 거든 반면 반대 쪽은 우리 말글을 한참 익힐 나이의 아이들에게 영어로 수업한다니 애들을 모두 외국인 만들 거냐며 핏대를 세웠다. 양쪽 주장 다 일리 있다고 고개만 끄덕거리다가 문득 의문이 생겼다. 초등학교에서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게 과연 가능한지,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하는 것이었다.

자, 내가 경제특구 또는 국제자유도시에 사는데 내 아이가 몇년 뒤면 초등학교에 간다고 가정해 보자. 이땅에서 태어나 자란 보통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서 곧바로 영어 수업을 할 만큼 영어에 익숙할 리 없다. 그렇다면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사전준비를 시켜야 할 것이다. 정부 발표에 취학전 어린이에게 영어교육 시켜준다는 내용이 없으니 사전준비는 마땅히 부모의 몫이다. 생활비를 줄여서라도 영어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지금처럼 우리 말글로 수업해도 수학·과학 성적 나오기가 쉽지 않다던데, 그러다 우리 아이 초등학교 졸업할 때는 ‘깡통’이 돼 있는 건 아닐까.

이번에는 교사 문제를 생각해 보자. 경제특구나 국제자유도시에 근무하는 초등학교 교사라 해서 다른 지역 교사들보다 영어를 훨씬 잘할 까닭은 없다. 그들 역시 우리 말글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전제에서 교육받았고 실력을 닦았기에 영어 강의는 별개 문제인 것이다. 그러면 영어로 수업할 선생님들은 따로 모셔야 한다. 영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강사라고 모두 영어 강의를 맡을 수 없다. 영어 능력 말고도 교사로서 전문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해결책이라곤 결국 외국의 영어권 교사들을 ‘수입’하는 길밖에 없어 보이는데 그 경비는 누가 대나. 그리고 영어수업에 자리를 내준 현직 교사들은 어디서 누구를 가르치게 될까.

교육부는 영어몰입식 교육 도입을 발표하면서 서울의 한 사립 초등학교를 성공사례로 들었다고 한다. 그 학교 아이들은 졸업하면 곧바로 유학을 가도 지장없을 정도로 영어를 잘한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영어 수업을 듣느라 수업시간이 1.5배 정도로 많고, 학비가 석달에 150만원(연 600만원)이나 된다. 사립학교이니만큼 교실·교사의 숫자 등 교육환경도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영어로 강의할 초등학교의 제반 교육여건을 이 사립학교 수준으로 맞춰줄 계획을 갖고 있는 걸까.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이니 연 학비 600만원을 학부모에게 부담시킬 리도 없을 테고….

이같은 생각을 이어가는 동안 갖가지 단상이 중간중간 스며들었다. 지난 20일 치른 경기지역 외고 특별전형의 영어시험이 토플보다 어려웠다고 한다. 기업체 신입사원에게 부족한 것은 영어 실력이 아니라 국어 능력이라는 인사 담당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도 있었다. 영어서적을 번역할 때 힘든 이유는 영어보다 우리말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국내 최고 수준의 번역가가 실토했다. 우리 사회에 영어교육은 이미 넘쳐나는 건 아닐까. 그보다는 우리말글 교육이 더욱 시급한 것은 아닐까.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2005-10-2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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