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종친회/이용원 논설위원

[씨줄날줄] 종친회/이용원 논설위원

이용원 기자
입력 2005-07-12 00:00
수정 2005-07-12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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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처럼 자신의 성씨(姓氏)에 대한 관심과 충성도가 높은 민족은 따로 없을 듯하다. 통성명을 마치면 상대의 본관과 항렬(行列)을 확인한 뒤 그 집안의 내력을 줄줄이 읊어주는 보학(譜學)의 대가가 적지 않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단 본관을 들은 뒤에는 “아, 양반 집안이군요.”라고 찬사를 던지는 건 기본예의라 할 정도이다. 거기에 상대방 집안에서 배출한 역사적 인물을 기억해 내 한마디 거들면 둘의 관계는 급속히 친밀해진다. 혈통은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지금의 중국식 성씨가 일반화한 시기는 나말여초(羅末麗初)이다. 물론 그전에도 성씨는 있었다. 고구려에는 고(高)·을지(乙支), 백제에는 부여(夫餘)·흑치(黑齒), 신라에는 박(朴)·석(昔)·김(金)씨 등 3국의 성씨가 한국·중국 등의 사서에 10여가지씩 등장한다. 하지만 7세기 신라가 당나라를 본떠 제도를 정비하고서야 한자로 된 성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이후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가 개국공신과 지방 호족들에게 성을 널리 내림으로써 제도로 정착됐다.

2000년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국내에는 286개 성(귀화인 제외)에 4179개 본관이 있는데 그 대부분이 고려 시대에 자리잡은 것이다. 이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이미 250여 성씨가 등장하는 것으로도 입증된다. 유학이 성한 조선시대에 들어 각 가문은 정체성을 확보, 유지하고자 종친회를 만들고 족보를 간행했다. 종친회로서 처음 기록에 나타나는 것이 1580년의 ‘안동 김씨 종약소’임을 감안하면 종친회의 역사도 400년이 넘었다.

종친회를 빙자해 값싼 족자를 10만원대에 팔아온 일당이 엊그제 검찰에 붙잡혔다고 한다. 이들은 대성(大姓)이 아니라서 도리어 문중에 대한 귀속의식이 강하리라 짐작되는 성씨 가운데 시골에 사는 사람들을 전화번호부에서 골라 범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5년동안 7900여명에게 7억여원어치를 팔았는데도 피해신고가 한건도 없었다고 하니 종친회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 요즘 각 종친회는 문중 일을 맡아 하려는 젊은이들이 없어 크게 고민이라고 한다.400년 넘게 이어온 우리의 전통 하나가 사라지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느낀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2005-07-1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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