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 풀섶이나 묵정밭 귀퉁이에서 넝쿨을 늘이며 자라는 개똥참외를 아시는지요. 이런 참외는 십중팔구 사람의 배설물에 섞여 나온 씨앗이 싹을 틔워 열매를 맺은 것인데, 누가 돌보지 않으니 제대로 클 리가 없지요. 그래서 모양도 쭈글텅 우습고 크기도 조막만해 ‘봉탱이 참외’라고 불렀습니다.
소싯적 열무가 자라는 조밭 귀퉁이에 이 개똥참외가 있었습니다. 노란 꽃이 지더니 이내 풋대추 같은 참외가 열리더군요. 옛날 참외는 요새 것처럼 골이 없는 ‘민자’참외였는데, 그랬든 말았든 그걸 애지중지해 하루에도 몇 번씩 훔쳐보고, 누가 알세라 풀을 뜯어 덮어도 주고 해 제법 노랗게 익어갔지요. 코흘리개가 몰래 지켜보는 개똥참외는 비상금으로 감춰둔 10만원짜리 수표보다 뿌듯한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한 날, 이슬을 털면서 다가간 밭두렁에는 있어야 할 개똥참외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아, 그 허망한 상실감을 누가 알까요. 그 자리에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봉탱이 참외가 사라지고 없는 빈 자리를 아주 오랫동안 지켜봐야 했습니다. 세상 일 나만 안다고 믿는 것은 아무래도 착각이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소싯적 열무가 자라는 조밭 귀퉁이에 이 개똥참외가 있었습니다. 노란 꽃이 지더니 이내 풋대추 같은 참외가 열리더군요. 옛날 참외는 요새 것처럼 골이 없는 ‘민자’참외였는데, 그랬든 말았든 그걸 애지중지해 하루에도 몇 번씩 훔쳐보고, 누가 알세라 풀을 뜯어 덮어도 주고 해 제법 노랗게 익어갔지요. 코흘리개가 몰래 지켜보는 개똥참외는 비상금으로 감춰둔 10만원짜리 수표보다 뿌듯한 기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한 날, 이슬을 털면서 다가간 밭두렁에는 있어야 할 개똥참외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아, 그 허망한 상실감을 누가 알까요. 그 자리에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봉탱이 참외가 사라지고 없는 빈 자리를 아주 오랫동안 지켜봐야 했습니다. 세상 일 나만 안다고 믿는 것은 아무래도 착각이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5-06-2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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