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아버지의 편지/심재억 문화부 차장

[길섶에서] 아버지의 편지/심재억 문화부 차장

입력 2005-05-12 00:00
수정 2005-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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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그런 세상을 거쳐 오지 않았을까만, 모든 아버지는 편지를 잘 쓰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밥상머리에서 군더더기 없이 몇 마디 훈시(?)하는 것으로 자식의 모든 일을 조종하고, 관장하는 권위자였으니까요. 그런 아버지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행두 편에 몸치(몸살)로 학교 못 갔다는 소식 들었다. 감기 하나 걸리는 것도 다 지 몸 간수 못한 탓이다. 입 짧은 티 내지 말고 뭐든 잘 먹어야 실한 법이다. 자리는 가려 누워도 먹는 것은 까탈 부리면 안 된다. 마침 비가 와 논물도 가뒀고, 산밭에 감자도 심었다. 전번 비에 헌 할머니 묘도 부러 손 얻어 단도리 끝냈으니 집에 일 없다. 토요일에 오거라.’

도시에 나가 자취하는 중학생 아들이 몸살로 곤욕을 치렀다는 말을 전해 듣고 보낸 편집니다. 말미에는 ‘까스 겁나니 잘 때는 정지문 꽉 닫지 마라.’라는, 예의 엄한 분부까지 곁들여 있습니다. 사흘 만에 학교에서 받은 아버지의 편지를 보고서야 ‘내가 그 사람 아들 맞구나.’ 하는 안도와 미더움에 콧잔등이 시큰했었는데, 안으로만 그런 자식 사랑을 키우셨는지 그후 다시는 그런 편지를 받지 못한 채 그만 여의고 말았습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5-05-1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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