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교육개혁 현실에 맞게 추진해야/한석수 교육부 기획법무담당관

[기고] 교육개혁 현실에 맞게 추진해야/한석수 교육부 기획법무담당관

입력 2005-04-27 00:00
수정 2005-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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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이오와에서 공부할 때 경험한 일이다. 수업시간에 조를 편성해서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만들어보는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분임별 연구 및 토론을 거쳐 안을 만들어 발표하는 것인데, 그 진행과정이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었다. 모여서 잡담 비슷한 얘기만 장황하게 나누는 것이었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나는 한가지 제안을 했다. 미국에 50개 주가 있고, 아이오와 주만 해도 수많은 교육자치구가 있으니 우선 우수 사례를 한번 조사해보자고. 그렇지만 그들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분임에서의 토론과 별도로 개선안을 따로 만들어 분임에 제출했다. 인터넷 서치와 기존의 연구 보고서들을 중심으로 당시 아이오와 주에서 사용되지 않던 새로운 제도나 용어 등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워낙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많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럴듯해 보이는 보고서를 만들 수가 있었다.

다른 미국인 학생들은 여전히 때로는 낄낄거리기도 하고 엄청 심각하기도 하면서 지루한 토론을 계속했다. 나의 중간발표에 흥미롭다는 듯 관심은 보여줬지만 솔직히 기대한 만큼의 호응은 아니었다. 다른 급우들의 중간보고서는 너무 밋밋하여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그들은 토론과 수정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그렇게 2주 정도가 지나고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분임이나, 타 분임에서 만든 보고서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든 보고서들의 특징은 현실적으로 매우 실행 가능한 방안이라는 점이었다. 개선방안들은 구체적 배경과 맥락을 가지고 있었고,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교육적으로 충분히 고려하고 있었다.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는 지극히 평범했으며 제안하고 있는 방안 역시 그리 신선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가 당초 발표했던 새로운 용어나 제도들은 그들 방식으로 잘 소화되어 담겨 있었다.

당시 나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교육과정 수업시간을 통해서 미국인들의 문제해결방식을 제대로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각하게 자신을 반성하면서, 우리의 일처리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창의적인 방안을 스스로 만들어내려는 노력보다 남의 것을 모방하려는 습관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이 그리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우리 교육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도, 우리는 외국의, 선진(?) 제도를 배우는 데 너무 골몰했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것들은 방향이나 시사점을 제시해줄 수는 있지만 결코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우리의 현실적 조건들에 터를 잡아 심각하게 고민하고 진지하게 토의하면서 우리 방식을 찾아내려 노력해야 했다.

‘사고방식에 있어서의 사대주의’를 떨쳐버리지 못하고는 후진성을 탈피할 수 없다. 얼핏 멋져 보이고 그럴듯하지만 문화적 배경을 결여한 제도나 생각들은 공허하다. 그렇게 화려해 보이던 교육개혁의 신조어나 제도들이 남긴 것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우리의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 교육의 울타리를 차분히 살펴보고 조그만 일부터 바로 세우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조급함을 떨치고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추진방식에 있어서도 절단하고 이식하는 외과수술형 개혁보다는 진맥을 통해 허한 곳을 보하고 체질을 개선해주는 한방식 처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교육정책은 일관성과 안정성이 중요하고 이를 통한 신뢰구축이 성공적 추진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제사 준비를 위해 놋그릇을 닦던 어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땀을 뻘뻘 흘리시며 푸르딩딩하던 놋그릇을 반짝반짝 닦아내던 그 모습은 어쩐지 경건해 보이기까지 했었다. 교육개혁은 어쩌면 놋그릇을 닦던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미래를 찬란하게 비출 희망의 빛은 그저 녹에 가려있을 뿐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그저 이를 공들여 닦아내는 것은 아닐까?

한석수 교육부 기획법무담당관
2005-04-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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