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에] 다시 낙산사를 생각하며/원철스님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토요일 아침에] 다시 낙산사를 생각하며/원철스님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입력 2005-04-16 00:00
수정 2005-04-16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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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성지가 저렇게 없어지는 것이구나.

복원능력이 없다면 그대로 폐사지가 되겠구나.

교통과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예전에는 없어지는 줄도 모르고 없어졌겠구나.

그 백두대간을 가로질러 칼바람이 미친 듯이 부는 날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면서 넋두리처럼 내뱉은 말들이다.

공양간에서 ‘밥맛을 모르겠다.’는 노스님의 한마디는 그날 아픔의 또 다른 표현이다.

꽃을 피워야 할 봄바람이 소나무를 쓰러지게 하는 광풍이 되었고 낙가산은 산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는 개골산이 되어버렸다.

십여년 전에 스승을 모시고 도반들과 중국의 보타낙가산 불긍거 관음원을 참배한 적이 있다. 영파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이었다. 그 바닷가는 우리의 낙산사 그리고 홍련암과 너무도 닮아 있어 남의 나라 땅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익숙하게만 느껴졌다.

관음진신이 출현하였다는 글씨가 기록된 그 바위 근처에서 일부러 한참을 서성거리면서 바다 너머로 한동안 눈길을 떼지 못했다. 동쪽 끝에 있는 우리의 낙산관음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낯선 땅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낯섦을 지금 정말 느끼고 있다. 그건 현재 남아있는 낙산사가 나를 참으로 낯설게 했기 때문이다.

처음의 황망함은 시간이 지나가니 이제 좀 냉정해지고 모든 걸 차분히 돌아보게 된다.

정말 그 낙산사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하지만 사실 달라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도드라지게 드러난 성지로 모습을 바꾸었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오히려 지금 그 화려한 화장을 다 지워버린 맨 얼굴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이제 마음의 눈으로 성지를 바라볼 수 있는 정신적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제 육안(肉眼)으로만 성지를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심안(心眼)으로 바라보고 싶다. 물론 지혜로운 이는 육안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하고 심안으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성지라고 하는 것은 눈으로 보는 성지와 마음으로 보는 성지가 항상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항상 육안으로 보는 것에만 너무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걸 너무 당연히 여긴 나머지 그게 집착인 줄조차 몰랐다. 이제 저 타버린 까만 솔밭 속에서도 심안으로 성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 또 다른 나의 눈이 존재하고 있음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날 인근 산과 모든 살아 있는 것들과 집과 논밭과 살림살이와 모든 것들이 타고 있었다.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했을 뿐이다. 이제 그들이 원래대로 몸과 마음과 생활기반이 복구되고 그들의 고통이 끝나면 우리의 고통도 자연스럽게 끝날 것이다.

수행자로서 신심이 바닥을 향해 달리고 또 공부길이 막힐 때면 늘 터만 남은 폐사지를 찾곤 했다. 그 자리에서 무상(無常)을 체험하고 또 발심(發心)의 계기를 통해 다시금 마음을 새롭게 하곤 했다. 그 옛날 저 큰 절터들의 탑과 당간지주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그 황량함 속에서 ‘모든 것은 변해가는 것이니 절대로 방일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곤 했다. 빈 마음은 모든 걸 원점에서, 다시금 순수함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우리는 잘나갈 때에도 항상 어려운 경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삶의 화려함 속에서도 소박한 본래 모습은 잃지 말아야 한다. 넘쳐나는 물질의 풍부함 속에서도 모자랄 때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삶의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잊고서 살기가 쉽다. 반대로 타버림의 절망 속에서도 미래의 희망들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낙담 속에서도 꿈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퇴굴심 속에서도 부단없는 용맹심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이제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성지를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육안으로도 볼 수 있도록 힘을 모아 가꾸어 내는 일만 남았다. 그동안 혹 군살이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과감하게 털어내야 한다. 그리고 성지가 가져야 하는 단순·절제의 미를 한껏 드러내는 그런 기회를 제대로 살려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또 다른 문화적 전환점 위에 서있다고 하겠다.

원철스님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2005-04-1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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