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바늘귀/심재억 문화부 차장

[길섶에서] 바늘귀/심재억 문화부 차장

입력 2005-03-14 00:00
수정 2005-03-14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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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봐야 보이지만 바늘에도 틀림없이 귀가 있습니다. 바늘을 모르고 사는 요즘 사람들, 이렇게 말하면 미끈한 바늘을 더듬으며 혹시 도드라진 귀를 찾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귀와 달리 바늘귀는 도드라져 있지 않습니다. 실을 꿰도록 뚫어놓은 바늘 끝의 작은 구멍을 귀라고 부르니까요. 그 귀가 얼마나 작으면 커다란 낙타에 견줘 뚫기 어려운 관문을 뜻했겠습니까.

호롱불 밑에서 실을 꿰려는 어머니의 손이 한사코 바늘귀를 비켜납니다. 실오라기 끝에 침을 발라 다시 꿰어 보지만 침침한 눈 때문에 그게 쉽지 않습니다. 보다 못해 바늘과 실을 건네받아 단번에 꿰어 주면 “자식들은 아직 거미새끼 같은데 눈부터 가서 어찌할꼬.” 이런 어머니의 푸념이 문풍지를 헤집는 바람처럼 서늘해 딱히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안타까움이 가슴으로 번지곤 했습니다.

풀먹인 이불 호청을 맞추시는 어머니를 위해 여분의 돗바늘에 길다란 실을 꿰어 놓고는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잠든 제 엉덩이를 토닥이며 하시던 어머니의 혼잣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아이고, 이눔아. 게으른 놈 짐 많이 진다고, 아까운 실을 댓발이나 잘라 꿰놓으면 바느질이 된다던?”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5-03-1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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