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공간] 정몽주는 누가 죽였는가/이현주 목사

[녹색공간] 정몽주는 누가 죽였는가/이현주 목사

입력 2005-02-28 00:00
수정 2005-02-28 08:19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통일되면 가보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한 곳이 개성 선죽교다. 선죽교는 이방원의 지시로 조영규가 정몽주를 쇠몽둥이로 쳐죽였다는 곳이다.

정몽주가 이성계를 문병갔을 때 이방원이 술상을 차려 대접하면서 그의 속셈을 떠보려고 읊었다는 시조는 이렇다.“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긔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에 화답하여 읊은 정몽주의 시조는 ‘단심가’ 라는 제목까지 붙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방원의 노래에 담겨진 뜻은 말 그대로,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냐, 형편 닿는 대로 시절의 변화에 적당히 응하면서 이럭저럭 살자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잖아 있다.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이방원)이라고 불러 보자. 그들에게는 남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이루어야 할 무슨 뜻이 없다. 반면에 정몽주의 단심가에는 말 그대로 붉은 핏발이 서려 있는 느낌이다. 내 뜻과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백번을 죽여도 내 뜻을 빼앗거나 꺾지는 못할 것이다. 세상에는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없잖아 있다. 필요할 경우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 남을 죽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정몽주)라고 불러 보자.

그날, 선죽교에서는 누가 누구를 죽였던 것일까? 역사는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였다고 말한다. 그 사건 이후로 정몽주의 모습은 사라지고 이방원이 나중에 임금까지 된 것을 보면 틀린 기록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인 것은 아니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냐, 형편 닿는 대로 한 백년 살다가 죽지. 이런 노래를 부른 (이방원)에게 누구를 죽이면서까지 이루어야 할 계획이나, 반드시 관철해야 할 뜻이 있었겠는가? 그랬다면 그 사람은 (이방원)이 아니라 (정몽주)다. 그러니까 그날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인 자는 (이방원)이 아니라 이방원의 얼굴을 한 (정몽주)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피바람이 불었을 리 없다.

정몽주의 얼굴을 한 (정몽주)를 이방원의 얼굴을 한 (정몽주)가 죽였다.(이방원)은 남을 죽여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할 무엇이 없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남의 목숨을 없애면서까지 관철시켜야 할 뜻이나 계획이 없다.‘논어’에 보면 공자가 그런 분이었다는 기록이 있다(제9,‘자한’편). 실제로 그날 선죽교에서 공자가 정몽주를 만났다고 상상해 보자. 그가 과연 부하를 시켜 쇠몽둥이로 정몽주를 쳐죽였겠는가?

“그릇된 확신이야말로 모든 미망 가운데서도 가장 사람을 황폐케 하는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도 폴 포트도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에 찬 사람들이었다.”(소걀 린포체).

이것은 반드시 이래야 한다고 확신하여 그 확신을 관철코자 하는 사람들과 그것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확신하여 그 확신을 목숨 걸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이 만나면 (정몽주)가 (정몽주)를 죽이는 살벌한 선죽교의 역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을 터인데….

세계가 당장 오늘 밤에 끝장난다 하더라도,“네 뜻이 그러냐? 내 뜻은 다르지만 네가 없어지면 나도 없어져야 하니 내 뜻을 꺾으마. 어디 한번 네 뜻대로 해보자.”고 말하는 사람 좀 보고 싶다.

이현주 목사
2005-02-28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불장인 국내증시에서 여러분의 투자성적은 어떤가요?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며 5000선에 바짝 다가섰다. 연초 이후 상승률은 15% 안팎으로,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가파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 수익률은 외국인의 절반에 그치고 있다. 여러분의 수익률은 어떤가요?
1. 수익을 봤다.
2. 손해를 봤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