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005년의 이슈’로 ‘리더십’을 꼽았다. 사실 각 분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에게 리더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 그들이 리더십을 어떻게 발휘하느냐에 따라 국가 발전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더십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역사도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없는 대로마제국은 생각할 수 없다. 관용을 주장한 링컨의 신념과 희생이 없었다면 미국은 남북의 두 나라로 갈라져 지금처럼 번영을 구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처칠이 있었기에 히틀러의 칼날을 무찌르고 영국과 유럽을 구할 수 있었다. 이들이 지금까지 존경받는 것도 탁월한 리더십을 갖췄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보면 리더십이 더더욱 절실해진다. 경제회생, 정치개혁, 여야관계, 노사관계 역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리더십이 발휘되기는커녕 점점 무너져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요한 고비마다 그것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주고 있다. 정치권의 리더십 실종은 누차 보아왔기에 언급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리더십을 거의 도전받지 않았던 노동계도 같은 전철을 밟는 것 같아 씁쓸하다.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복귀 무산은 이수호 위원장의 리더십 부재에서 비롯됐기에 더욱 그렇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지도자들이 리더십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세계와의 경쟁에서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지 않은가. 국내에서 아옹다옹할 때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리더십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석학들이 부시 대통령에게 한 고언은 노 대통령이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하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위대한 지도자들은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정치적 적수들까지 포용했다.”면서 통합적 리더십을 주문했다. 또 존 미첨 뉴스위크 편집인은 “위대한 지도자들은 신념과 실용주의간에 균형을 맞출 줄 알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성공한 지도자의 덕목으로 꼽은 ‘서생적 문제의식’ 및 ‘상인적 현실감각’과 맥을 같이한다.
그럼 성공적 리더십을 살펴보자. 흔히 리더를 말할 때 4가지 자질을 거론하고 있다. 인격, 비전, 행동, 확신이 있느냐를 놓고 리더로서의 자질론을 저울질한다. 먼저 리더는 인격의 고결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또 최고의 리더는 실천하는 사람이다. 비전을 추구하기 위해 리더 스스로가 헌신하는 모습을 솔선해 보여줌으로써 비전에 대한 공감대를 넓힐 수 있다. 그럴듯한 말재주와 분위기 조성으로 한두번 남들을 현혹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금방 탄로나는 법이다. 아울러 리더는 건강한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이는 교만이나 이기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다.
특히 지도자에겐 ‘믿음성’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목표와 인센티브를 내걸어도 믿을 수 없는 지도자에게 자신을 의탁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그 목표 자체가 의심받기 때문이다. 카리스마나 통솔력, 뛰어난 언변 등 우리가 당연시했던 리더십 덕목보다는 오히려 도덕적 품성이 훨씬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 역시 겸허한 자기 반성과 수양에서 출발한다.
무엇보다 여야 정치권이 리더십 회복에 앞장서야 한다. 참여정부 출범 후 2년간 국민과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은 채 반목과 갈등만 증폭시켜 오지 않았는가. 각자 아집에 빠져 일방통행을 해온 결과다.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리더십을 벤치마킹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길 바란다.
오풍연 공공정책부장
역사도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없는 대로마제국은 생각할 수 없다. 관용을 주장한 링컨의 신념과 희생이 없었다면 미국은 남북의 두 나라로 갈라져 지금처럼 번영을 구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처칠이 있었기에 히틀러의 칼날을 무찌르고 영국과 유럽을 구할 수 있었다. 이들이 지금까지 존경받는 것도 탁월한 리더십을 갖췄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보면 리더십이 더더욱 절실해진다. 경제회생, 정치개혁, 여야관계, 노사관계 역시 리더십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리더십이 발휘되기는커녕 점점 무너져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요한 고비마다 그것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주고 있다. 정치권의 리더십 실종은 누차 보아왔기에 언급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리더십을 거의 도전받지 않았던 노동계도 같은 전철을 밟는 것 같아 씁쓸하다. 민주노총의 노사정위 복귀 무산은 이수호 위원장의 리더십 부재에서 비롯됐기에 더욱 그렇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지도자들이 리더십으로 재무장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세계와의 경쟁에서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지 않은가. 국내에서 아옹다옹할 때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리더십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석학들이 부시 대통령에게 한 고언은 노 대통령이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하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위대한 지도자들은 공동의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정치적 적수들까지 포용했다.”면서 통합적 리더십을 주문했다. 또 존 미첨 뉴스위크 편집인은 “위대한 지도자들은 신념과 실용주의간에 균형을 맞출 줄 알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성공한 지도자의 덕목으로 꼽은 ‘서생적 문제의식’ 및 ‘상인적 현실감각’과 맥을 같이한다.
그럼 성공적 리더십을 살펴보자. 흔히 리더를 말할 때 4가지 자질을 거론하고 있다. 인격, 비전, 행동, 확신이 있느냐를 놓고 리더로서의 자질론을 저울질한다. 먼저 리더는 인격의 고결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또 최고의 리더는 실천하는 사람이다. 비전을 추구하기 위해 리더 스스로가 헌신하는 모습을 솔선해 보여줌으로써 비전에 대한 공감대를 넓힐 수 있다. 그럴듯한 말재주와 분위기 조성으로 한두번 남들을 현혹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금방 탄로나는 법이다. 아울러 리더는 건강한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이는 교만이나 이기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다.
특히 지도자에겐 ‘믿음성’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목표와 인센티브를 내걸어도 믿을 수 없는 지도자에게 자신을 의탁하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그 목표 자체가 의심받기 때문이다. 카리스마나 통솔력, 뛰어난 언변 등 우리가 당연시했던 리더십 덕목보다는 오히려 도덕적 품성이 훨씬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 역시 겸허한 자기 반성과 수양에서 출발한다.
무엇보다 여야 정치권이 리더십 회복에 앞장서야 한다. 참여정부 출범 후 2년간 국민과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은 채 반목과 갈등만 증폭시켜 오지 않았는가. 각자 아집에 빠져 일방통행을 해온 결과다.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리더십을 벤치마킹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길 바란다.
오풍연 공공정책부장
2005-02-04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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