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하는 게 전쟁이다. 심리전이 병력이나 화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적의 마음을 흔들어 사기를 떨어뜨리거나 공포심 유발, 또는 달콤한 유혹으로 전투력을 잃게 하는 따위가 그 핵심이다. 야비하긴 하나 처참한 살상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오히려 인간적일 수 있다.
심리전은 동서고금의 전쟁을 통해 다양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구사됐다. 중국 한초전(漢楚戰)에서 한나라 한신이 초나라 항우를 사면초가(四面楚歌)로 제압하는 장면은 심리전의 압권이라 할 만하다.13세기 세계를 주름잡은 칭기즈칸은 자신의 군사들에게 ‘신(神)의 군대’란 자부심을 불어넣어 용감무쌍하게 싸우도록 독려한 심리전술가로 유명하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이 미모의 여성 아나운서를 내세워 전쟁에 지친 미군에게 향수를 일으키도록 한 대미(對美) 영어방송 ‘도쿄로즈’는 현대판 심리전의 대표적 사례다.
남북한도 휴전 후 50년이 넘도록 고도의 심리전을 벌여왔다. 화해·협력무드를 타고 지난해 휴전선 155마일에 설치된 확성기 등 선전도구가 철거되긴 했어도 심리전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예단하긴 어렵다. 북한이 적공국(敵攻局)이란 전담기구를 두고 10여개의 심리전 부대를 운영 중이며, 판문점에 파견된 인민군 병사들이 적공국 소속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10년 전, 미국이 심리전을 전개하기 위해 ‘게이폭탄(Gay Bomb)’ 개발 계획을 세웠다는 근자의 외신보도가 화제다. 영국의 BBC 인터넷판에 따르면 게이폭탄은 적 병사들이 동성애를 느끼도록 자극하는 화학무기인데, 이 폭탄에 맞으면 병사들끼리 사랑에 빠져 군기가 문란해지고 전투 의욕을 잃게 한다는 것이다. 얼핏 상상컨대, 폭탄이 터지면 상대를 이성으로 느끼게 관능적인 냄새가 폴폴 풍기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매혹적인 향기로 이성을 끄는 헤라지일향이나 장미향·시실리향·백합향 같은 게 폭탄재료로 제격일 수도 있겠다.
교전지역에 잘못 터뜨려 피아 모두가 총을 놓고 사랑하게 된다면 그 진가는 더 발휘될 것 같다는 황당한 생각도 든다. 영화나 소설에나 있을 법한 구상이라 실행되지 못했겠지만, 인간을 그 본연보다 더 동물화하려는 발상이 처연하다.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역설을 게이폭탄에서 다시 읽는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심리전은 동서고금의 전쟁을 통해 다양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구사됐다. 중국 한초전(漢楚戰)에서 한나라 한신이 초나라 항우를 사면초가(四面楚歌)로 제압하는 장면은 심리전의 압권이라 할 만하다.13세기 세계를 주름잡은 칭기즈칸은 자신의 군사들에게 ‘신(神)의 군대’란 자부심을 불어넣어 용감무쌍하게 싸우도록 독려한 심리전술가로 유명하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이 미모의 여성 아나운서를 내세워 전쟁에 지친 미군에게 향수를 일으키도록 한 대미(對美) 영어방송 ‘도쿄로즈’는 현대판 심리전의 대표적 사례다.
남북한도 휴전 후 50년이 넘도록 고도의 심리전을 벌여왔다. 화해·협력무드를 타고 지난해 휴전선 155마일에 설치된 확성기 등 선전도구가 철거되긴 했어도 심리전이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예단하긴 어렵다. 북한이 적공국(敵攻局)이란 전담기구를 두고 10여개의 심리전 부대를 운영 중이며, 판문점에 파견된 인민군 병사들이 적공국 소속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10년 전, 미국이 심리전을 전개하기 위해 ‘게이폭탄(Gay Bomb)’ 개발 계획을 세웠다는 근자의 외신보도가 화제다. 영국의 BBC 인터넷판에 따르면 게이폭탄은 적 병사들이 동성애를 느끼도록 자극하는 화학무기인데, 이 폭탄에 맞으면 병사들끼리 사랑에 빠져 군기가 문란해지고 전투 의욕을 잃게 한다는 것이다. 얼핏 상상컨대, 폭탄이 터지면 상대를 이성으로 느끼게 관능적인 냄새가 폴폴 풍기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매혹적인 향기로 이성을 끄는 헤라지일향이나 장미향·시실리향·백합향 같은 게 폭탄재료로 제격일 수도 있겠다.
교전지역에 잘못 터뜨려 피아 모두가 총을 놓고 사랑하게 된다면 그 진가는 더 발휘될 것 같다는 황당한 생각도 든다. 영화나 소설에나 있을 법한 구상이라 실행되지 못했겠지만, 인간을 그 본연보다 더 동물화하려는 발상이 처연하다.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역설을 게이폭탄에서 다시 읽는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05-01-1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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