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터키 리라貨/이기동 논설위원

[씨줄날줄] 터키 리라貨/이기동 논설위원

입력 2005-01-03 00:00
수정 2005-01-03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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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국제공항에 도착한 외국인들이 제일 황당한 일을 겪는 곳은 환전소다.100달러를 터키 리라로 바꾸면 작은 가방이 가득 찰 만큼 줘 몇백달러 바꾸면 주체하기 힘들 게 된다. 돈을 쓸 때는 더 헷갈린다. 택시 한번 타면 수천만 리라가 그냥 날아간다. 워낙 형편들이 어려운지라, 구두닦이 소년들 눈에 띄면 그냥 벗어나기가 불가능한데, 한번 닦으면 부르는 값이 몇백만 리라다.

1990년대초 소련 붕괴로 독립한 공화국들은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렸다. 인플레는 가위 살인적이었다. 벽지를 사서 바르는 것보다 루블화를 그냥 바르는 게 더 싸게 먹힌다고 할 정도였다. 다른 공화국들의 어려움은 상대적으로 러시아보다 더했다. 한 러시아신문에 ‘러시아 백만장자들이여, 불쌍한 우크라이나 억만장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웃지 못할 만평이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루블화도 터키 리라의 악명에는 턱없이 못 미쳤을 성싶다.

지난 연말 기준으로 1달러의 공식환율은 134만터키리라였다. 터키 정부가 새해 첫날 자정을 기해 리라의 뒷자리 동그라미 6개를 없애버렸다.100만분의 1로 화폐단위를 낮춘 뉴터키리라를 발행한 것이다. 아쉽게도 이로써 세계 최고액권의 명성을 자랑하던 2천만리라짜리 화폐는 천수를 다 못하고 퇴장하게 됐다. 새해첫날 구권기준으로 찍힌 터키의 한 복권 당첨금은 자그마치 15조리라. 기네스북감이다.

화폐개혁조치를 발표하며 터키중앙은행장은 콜라 한병에 200만리라라는 치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고 기뻐했다. 화폐개혁은 ‘유럽의 낙오자’ 낙인을 벗겠다는 터키인들의 오랜 노력의 결과다.2001년 경제위기 이후, 터키정부는 180억달러의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엄격한 긴축프로그램을 시행해 왔다. 그 덕분에 지난해 인플레는 10%이하로 잡히고,7.9%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화폐개혁에는 유럽연합(EU)가입이라는 터키인들의 보다 원대한 꿈이 걸려 있다. 프랑스와 독일정부가 지난해 말 터키의 EU가입 논의에 총대를 메고 나섰다. 국내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터키의 EU가입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그 용기에 터키정부가 성의를 보인 셈이다. 터키의 화폐단위변경으로 이제 세계 주요경제국 중 달러 환율이 네자리수인 나라는 한국만 남게 됐다고 한다. 뉴터키리라화가 우리의 원화 화폐단위변경 논의에 다시 불을 지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2005-01-0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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