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이 찬란한 가을에/임춘웅 언론인

[열린세상] 이 찬란한 가을에/임춘웅 언론인

입력 2004-10-13 00:00
수정 2004-10-13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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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시인 이해인씨가 ‘좋은 생각’ 10월호에 “이 가을은 나를 또 얼마나 설레게 할 것인가.”라고 썼다.시인의 감성은 참으로 놀랍다.시인의 이 한마디에 나는 벌써부터 가을을 앓고 있다.

시인의 말대로 가을이 오면 나는 마냥 설레게 된다.그리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그러면서도 마음 같이 훌쩍 떠나본 기억이 별로 없다.그래서 가을이 오면 설레는 가슴을 달래느라 마음고생을 하곤 한다.그래도 내겐 그 가을에 화려한 여행을 해본 기억이 있다.행운이었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대학 재학시절 윤모 교수가 실시한 선거조사를 위해 강원도 평창에 간 일이 있다.사람들을 만나느라 산야를 두루 누비고 다녔는데 때마침 가을이었다.평창에서 우연히 만난 가을은 너무나 화려했다.따가운 가을 햇살 아래 불타는 단풍은 내 영혼까지 물들이는 듯했다.가을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단풍이 그토록 고운 것을 처음으로 마음속 깊이 절절히 새겼던 것이다.

그때 이후 나는 가을이 되면 설레고,떠나고 싶으나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에 가을을 더욱 그립고 슬프게 느낀다.내 책상엔 사진 한 장이 놓여 있다.예쁜 틀에 넣어 가을만이 아니라 사시사철 놓아두고 있다.젊은 남녀가 강아지와 함께 단풍이 가득한 숲속을 거니는 평범한 사진인데 나는 그 사진 속에서나마 가을의 정취에 젖고 가을의 그 찬란한 슬픔에 가슴 절이곤 한다.

내게는 또 하나의 행운이 있었다.뉴욕에 근무할 때인데 참으로 과분한 호사였다.나는 단풍이야기가 나올 때면 뉴 잉글랜드의 단풍을 보지 않고는 단풍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말하곤 한다.혹시 그 단풍을 보지 못한 사람 앞에서 우쭐대려는 것이 아니다.뉴 잉글랜드 단풍은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캐나다 단풍이 유명한 것은 국기에 단풍잎이 새겨져 있는 데서도 알 수 있지만 뉴 잉글랜드만은 못하다.캐나다 단풍은 색깔이 유별나게 곱고 맑다.특히 단풍의 빨간색과 사철나무의 초록색,은행의 노란색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가을 빛깔은 실로 경이롭다.그러나 로키산맥 부근이 아니면 산이 드물어 단풍이 산과 만나는 맛이 부족하다.

그러나 뉴 잉글랜드는 다르다.산과 강과 단풍이 한데 어울려 뿜어내는 조화가 글로 형언키 어렵다.그래서 가을이면 단풍을 따라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려오며 이번 주말엔 몬트리올 단풍을,다음 주엔 화이트 마운틴을,그 다음주엔 스프링 필드를 보는 식이다.웨스트 포인트 인근에 자리잡은 세븐 레이크의 단풍 또한 일품이다.일곱 개의 호수를 가득 채우고 있는 단풍이 호수 속에서 넘실 거리면 마음이 아득해 진다.

올해는 단풍이 특별히 고울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다.칙칙하기 이를 데 없는 일상사를 벗어나 잠시나마 단풍속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즘 신문을 보면 사람들이 온통 제정신이 아니다.모두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삿대질을 해대고 있다.싸울 필요가 있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싸우기 위해서 싸우고 있는 것 같다.근·현대사 교과서 문제,북한의 장사정포 위협문제 같은 것들이 다 싸움거리를 찾아내 하는 정쟁들이다.현대사 부분은 국정교과서도 아니고 선택가능한 여러 교과서 중 하나일 뿐 아니라 그나마 앞뒤를 거두절미해 제기한 또 하나의 색깔논쟁이다.장사정포도 최근에 설치된 것이 아니다.그동안 수없이 제기됐던 사안이다.

‘산도 타고 바람도 타고 사람도 타는’ 계절이다.이 가을에 한동안 잊고 지낸 나자신을 한번쯤 되돌아보면 어떨까.고향산천도 그려보자.그리고 이 나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우이동 시인들의 합작시 ‘북한산 단풍’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산마다 물이 들어 하늘까지 젖는데/ 골짜기 능선마다 단풍이 든 사람들/ 그네들 발길따라 몸살하는 가을은/ 눈으로 만져다오 목을 뽑아 외치고/ 산도 타고 바람도 타고 사람도 타네>

임춘웅 언론인
2004-10-1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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