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국가보안법과 한국인의 의식/박상기 연세대 법대 학장

[열린세상] 국가보안법과 한국인의 의식/박상기 연세대 법대 학장

입력 2004-09-15 00:00
수정 2004-09-15 08:16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쟁이 뜨겁다.여야 정치권은 매일 이 문제를 가지고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이에 더해 진보와 보수적 사회단체 간의 공방도 계속되고 있다.마치 이념전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은 내용을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각자의 인식체계 속에서 다투고 있는 형상이다.현상적으로는 변화가 반영된 인식체계와 과거 회고적 인식체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다툼이 있다.그러므로 이러한 논쟁은 접합점을 찾을 수 없는 철길과 같다.예를 들어 국가보안법 폐지론자가 주장하는 반국가단체에 대한 찬양이나 고무행위를 처벌하는 제7조의 경우 존치론자는 광화문에서 인공기 흔드는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바로 이 규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형법보다 5년이나 먼저 1948년에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56년의 세월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법이다.이 법은 단순히 형사특별법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성격을 규정한 법이고,한국인의 사고방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법이다.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은 제정 당시에는 별로 없었다고 볼 수 있다.좌우 이념 대립의 와중에서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 법이었고,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모든 것이 반공에 집중됐던 정치·사회적 환경은 이 법에 대한 시비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사회가 바뀌었고,남북관계도 그동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진전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북한이 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있어도 남북관계의 발전은 가시적일 만큼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 인식을 같이한다면 국가보안법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직시할 줄 알아야 한다.그리고 이 법의 존재 형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합리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56년의 세월이 가져온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법의 문제점은 반국가단체 규정이나 찬양·고무 등의 죄,이적표현물 소지죄 등과 같은 구체적인 규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이 법의 존재로 인해 한국인의 의식세계에 사상의 자기검열이라는 인식체계가 자리잡게 됐다.즉 자신의 이념적 경향성을 스스로 검열하고 이러한 검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은 곧 무서운 범죄행위라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이처럼 한국인은 지난 56년의 세월 동안 이러한 인식체계 속에서 사고하고,가치판단을 하면서 살아 왔다.그러므로 한국인에게 사상의 자유는 당연히 소위 좌경 사상에 대한 철저한 배제를 전제로 했다.심지어 국내에서 출판된 비판적 사회과학 서적을 소지하고 읽은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게 했다.한국인의 사상체계의 편향성과 경직성은 여기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자유롭게 생각하는 능력은 가장 인간을 인간답게 해 주는 요소다.그런데 우리는 불행하게도 사상의 자유도 국가안보를 위해 제한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됐다.참으로 반공적 규범의식이 강한 민족적 특성을 몸에 지니게 된 것이다.국가보안법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깊은 상처는 아마 이것일 것이다.

국가안보가 특별법 조문 몇 개로 튼튼하게 지켜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인간에게 기본적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희망하고 사랑하는 구성원이 다수일 때 국가안보는 지켜질 수 있다.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우리 사회 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제 진정으로 자유롭게 사고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국민을 가진 사회를 이룩하려면 국가보안법이라는 자유사고에 대한 족쇄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자유로운 사상의 시장을 열고 여기에서 선택된 사상이 우리 사회를 지켜줄 것이다.

박상기 연세대 법대 학장
2004-09-15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유튜브 구독료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
1. 5000원 이하
2. 5000원 - 1만원
3. 1만원 - 2만원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