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김재섭/심재억 문화부 차장

[길섶에서] 김재섭/심재억 문화부 차장

입력 2004-09-13 00:00
수정 2004-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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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얼굴의 그가 마을로 돌아와 내게 처음 건넨 말은 “아버지가 누구냐?”는 것이었다.새벽마다 낡은 스피커를 타고 울리는 새마을노래에 단잠을 깨곤 했던 때이니 1970년대 중반이었을 것이다.아버지는 “똑똑한 사람이 안 됐다.”며 고기반찬이라도 있는 날이면 불러서 같이 밥을 먹기도 했지만 그는 별로 말이 없었다.피를 나눈 형제들조차 그런 그를 어려워했다.

대학 시절 ‘산’에 들어가 ‘빨갱이짓’하다 20년이 넘게 옥살이를 한 뒤 출소한 그에게 세상은 안락한 쉼터가 아니었다.몸뚱이 하나 뉘려고 머슴방을 전전하다 마을회관 모퉁이에 겨우 방 한칸 달아내 구멍가게를 시작했지만 한낮이면 들로,산으로 쏘다니는 게 일과였다.그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반생을 감옥소에서 보낸 사람이 맘 잡기 쉽겄냐?”며 안쓰러워했다.

키자란 죽순이 껍질을 벗을 무렵,돌밭머리 무덤에서 “어머니,죄송합니다.”라며 엎드려 울던 그를 기억한다.‘산’과 감옥을 거치면서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자문(刺文)한 사회주의자,그가 운신할 틈은 어디에도 없고,출감은 또다른 감옥이었을 것이다.마침 국가보안법이 회자되면서 문득 생각난 또 다른 우리의 이야기 한 토막.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4-09-1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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