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기록문학의 의미/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시인

[문화마당] 기록문학의 의미/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시인

입력 2004-09-02 00:00
수정 2004-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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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거사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특히 1세기 전부터 1970,80년대까지의 과거사가 집중 거론되고 있는 듯한데,1세기 전이라 함은 어림잡아 일제 강점기부터의 역사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왜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시기에 대한 조명인가 하는 점은 새삼 숙고해야 한다.무엇보다도 과거사에 대한 바른 이해의 중요성은 우리 모두 인정하고 있는 만큼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사실 나 자신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거사 문제에 대해 태무심하고 있었다.아마 대다수의 사람이 그랬다고 해도 무방하리라.당면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그런데 최근에 출간된 두 권의 책을 보면서 비로소 나름대로 사유하게 되었다.

그 책은 문학평론가 유종호의 ‘나의 해방 전후’와 일본 교포 작가 유미리의 장편소설 ‘8월의 저편’이다.유종호의 ‘나의 해방 전후’는 다음과 같은 문제적인 진술로 시작된다.그런데 이런 전제는 유미리의 ‘8월의 저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러 계제에 토로한 바 있지만 자기가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상상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우리의 근접 과거인 일제 시대나 해방 직후에 관해서도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세대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심상은 너무나 실상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결론부터 앞세운다면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읽고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일제 강점기에 대한 나의 사고 내용들을 전반적으로 수정하게 되었다.그래서 나는 이 두 저자들에게 내가 체험하지 못한 시대를 제대로 사유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크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이제 우리는 역사를 상상하되 최대한 사실에 근접해서 상상해야 하고 또 이 시기에 관한 한 그것이 가능해지는 최소한의 영역을 확보하게 되었음을 말할 수 있다.기록문학의 중요성이란 바로 이 점에서 나온다.

‘나의 해방 전후’에는 창씨개명을 둘러싼 우리들의 해묵은 오해,어린 초등학생까지 엄혹한 사역에 동원한 일제의 잔혹성,광복 이후에도 무의식적으로 일본어를 쓸 정도로 오랜 시간 가혹하게 주어졌던 내선일체의 교육 등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저자는 “이 책에는 있지도 않은 일을 적었거나 사실을 변조한 허구 부분은 전무”하다고 맹세하고 있으니 믿어도 좋으리라.

정말 충격적인 것은 ‘8월의 저편’이다.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 작가가 오직 일본어 자료들만을 통해서 습득한 지식과 가족들과 주변 인물의 취재만을 통해 썼다는 이 소설에는 일제의 총동원령과 정신대의 만행 등이 차마 눈을 뜨고 책장을 넘기기 힘들 정도로 가차 없이 그려져 있다.일제 강점기,한 마라토너가 겪은 인생의 사계가 다큐멘터리적으로 그려져 있는데,진실과 대면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은 극명하게 보여준다.이것이 언제나 끝날지 기약하기 어려웠던,일제 강점기의 우리 민중의 삶이었던 것이다.작가 유미리는 이렇게 말한다.“개인과 가족의 사연을 드러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역사를 그리는 방식을 택했다.”고.

이러한 훌륭한 기록 문학들이 있는 한,일제 강점기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전진할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 두 권의 책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 할 것이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시인
2004-09-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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