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첫 여성 대법관의 탄생/정기문 전북 군산대 사학과 교수

[시론] 첫 여성 대법관의 탄생/정기문 전북 군산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04-08-27 00:00
수정 2004-08-27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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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탄생했다.지난해 여성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탄생했으니 사법계에서 금녀의 영역은 모두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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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문 전북 군산대 사학과 교수
정기문 전북 군산대 사학과 교수 정기문 전북 군산대 사학과 교수
그렇지만 기쁨에 어깨춤이 나오기보다는 한숨으로 가슴이 내려앉는다.이번 일을 계기로 아직도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지 또 한번 확인했기 때문이다.많은 남성들은 김 대법관의 임명이 서열파괴이고 남녀 역차별이며,묵묵히 일하는 남성들을 소외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뿌리깊은 남성 중심 사고를 보여주는 것 같다.

사실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남성들은 남성 중심 사고를 발달시켜 왔다.남성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은 아이 낳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여겼다.17세기 파리에서 제작된 ‘여기에 그대가 찾는 여자가 있다’라는 그림 속 여성은 목 윗부분이 없다.이는 여성을 머리,즉 이성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당시 남성들의 여성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8세기 계몽사상이 등장하면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믿음이 세계적으로 확산됐다.그 후 선진적인 여성들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면,남자와 여자는 당연히 평등하다는 확신을 갖고 여성 해방 운동을 시작했다.1848년 뉴욕 세니카 폴스에서 스탠턴을 중심으로 100여명의 여성이 ‘여성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였고 그 때 최초로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였다.그 당시의 남자들은 여자들이 모두 미쳤다고 생각했고,심지어 더글러스라는 사람은 “여자들의 권리를 논의하느니 차라리 동물들의 권리를 논의 하겠다.”고 말했다.

입만 열만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고 외치는 남성들의 이중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1840년 스탠턴은 노예제 폐지를 위한 세계대회에 참가하려 했으나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회의장에 입장하지 못했다.노예제를 폐지해 평등한 세상을 구현하겠다고 모인 진보적인 남자들이 여성과 나란히 앉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김 대법관의 임명을 서열파괴이자 남녀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21세기의 사람들의 아이러니는 18세기와 다를 바 없다.다만 겉으로나마,공식적으로는 남녀평등을 주장할 뿐이다.

남녀간에 역차별이 있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남녀가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는 전제하에만 가능하다.그렇다면 남녀평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역차별 운운하는 이들에게 묻자.정말로 현재 우리 사회가 남녀 평등의 가치를 이뤘다고 생각하는가.그렇다면 왜 이제야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탄생했는가.

이 질문에 남성들은 ‘여성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그러나 현대 과학은 지적인 면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오히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했다.따라서 이제야 여성 대법관이 탄생한 것은 여성의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남녀차별이 구조적으로 행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남녀차별이 극심한데도 우리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이렇게 남녀가 평등하지 못한 상황에서 남녀역차별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진정한 남녀평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수없이 많은 서열파괴를 감행해야 하고,공직 사회에 여성할당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도와야 한다.여성 대법관이 한 명이 아니라 과반수인 일곱 명이 되는 날,그날 남녀역차별을 이야기하라.

정기문 전북 군산대 사학과 교수
2004-08-27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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