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밥상을 차리는 사회/이공주 이화여대 생물리화학 교수

[열린세상] 밥상을 차리는 사회/이공주 이화여대 생물리화학 교수

입력 2004-07-29 00:00
수정 2004-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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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즐겨 가는 식당이 하나 있다.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맛이 전혀 화려하지 않으나 여러가지 반찬을 조금씩 국과 함께 주어,마치 집에서 밥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그 식당을 내가 아는 사람과 같이 가보면 여러 반응을 볼 수 있다.어떤 사람들은 맛이 깔끔하고,잘 차려주었다고 맛있게 먹는다.정반대로 발라 먹기 어려운 작은 생선을 준다고,반찬이 너무 적고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같은 밥을 먹으면서도 왜 이렇게 반응이 다른 것일까.

흥미로운 것은 집에서 누군가에게 밥을 해줘야 하는 사람들은 그 집 밥을 모두 좋아하고,집에서 부인이나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늘상 먹는 사람은 그 집 밥에 전혀 감흥이 없다는 사실이다.밥을 하는 사람과,해주는 밥을 먹기만 한 사람들의 입장 차이가 같은 밥상에 대한 상반된 반응을 불러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밥을 하고,밥상을 차려 여럿이 나누어 먹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그때마다 밥을 하는 사람과 밥을 먹는 사람들의 입장차이가 나타나는 것 같다.사람에겐 부모님의 보호 아래 모든 혜택을 누리고,부모님이 차려준 밥을 먹고,가끔씩 반찬 투정도 하며 지낸 어린시절과,조금씩 시점은 다르겠지만 스스로 독립하여 자기 밥상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 독립적인 시기,자기뿐만 아니라 자식과 조직 등 다른 사람들의 몫까지 책임지고 밥상을 차려야 하는 어른 노릇을 하여야만 하는 시기가 있다.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어른이 되어 남을 위해 밥상을 차려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그러나 모든 어른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많은 경우 밥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해놓은 밥을 먹는 것에만 관심이 많아 어린이만 살고 있는 성숙되지 않은 사회가 아닌가 걱정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밥상 차리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떤 식탁을 차릴지를 미리 생각하고,시장을 보고,재료를 씻고,지지고,볶고,끓이며 음식을 만들고,이를 보기 좋은 그릇에 담아 식탁에 놓는다.이때 가만히 앉아 받아 먹는 사람들은 밥이 맛이 있느니 없느니 하며 먹는다.그러나 한번만이라도 밥을 처음부터 해본 사람이라면 직접 하지 않고 먹는 밥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누군가 밥을 한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밥하는 일과 같다.좋은 결과가 있다면 거기에는 누군가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이를 수행하기 위하여 다시 아이디어를 내고,일이 되게 하기 위하여 사람들과,조직들과 지지고 볶고,열심히 음식을 만들어 밥상을 차린 것이다.모두 이미 차려진 밥상만 보고,숟가락만 들고 앉아 더 맛있는 것을 먹을 궁리만 한다면 사회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성숙하고 경쟁력 있는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밥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이들이 최선을 다하여 밥을 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한국이 오늘날 이만큼 발전하여 경제 대국을 내다보고 있는 것은 기술 발전에 힘입은 바 크다.손이 좋고,생각이 좋은 한국인들의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기술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부터 차근차근 쌓아 제품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어진다.생각해 보면 이 일이야말로 밥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밥을 하여 밥상을 차려 주었던 사람들의 노력을 사회에서 더이상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사회 구성원들은 2만달러 시대를 만들자고 외쳐대면서,정작 그런 밥상을 만들려면,누가 그 밥을 하여야 할지를 생각하지 못하고,밥상에만 관심이 있다.이제 밥상을 차리기 위해 밥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어떻게 하면 밥을 하는 사람을 정말 중요하게 인정하는 사회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어떻게 하면 좋은 밥을 많이 지어 남에게도 베풀 수 있는 성숙된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가를 진정으로 고민하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공주 이화여대 생물리화학 교수
2004-07-2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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