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서울광장/이기동 논설위원

[씨줄날줄] 서울광장/이기동 논설위원

입력 2004-05-28 00:00
수정 2004-05-28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출근길 작은 즐거움 하나가 새로 생겼다.지하철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린 다음 지름길 대신 서울시청앞 잔디광장인 서울광장을 돌아서 출근하면서부터다.오갈 데 없어 시청 지붕주위를 맴돌던 비둘기떼가 싱싱한 아침기운을 담은 잔디밭에 내려앉아 먹이를 쫀다.지하도를 오르내려야 했던 시민들이 이제는 삼삼오오 잔디밭을 가로질러 일터로 향한다.이런 정경과 함께하는 아침은 축복이다.

서울광장은 개장 한달이 채 안 돼 서울시민들이 아끼는 휴식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잔디에 드러눕거나 혹은 팔베개를 한 가족,연인,노래분수에 뛰어들어 흠뻑 젖은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익숙한 주말풍경이 됐다.그런데 8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개악집시법 대응 연석회의’가 28일 이곳에서 야간집회를 열기로 했다.서울시와 관할경찰의 불가입장에도 주최측은 시위강행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

시위 주최측의 입장은 단호하다.개정 집시법 불복종 운동의 본격적인 첫집회 장소로 이곳을 택한 것이다.경찰은 집시법 위반을 이유로,서울시는 정치집회 불허를 규정한 광장운영 조례를 들어 시위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하지만 시위의 ‘시위효과’를 노리는 주최측은 굴복하지 않을 태세다.시위대가 광장을 차지하면 보통시민들은 모처럼 찾은 소중한 쉼터에서 밀려나게 된다.

법률적인 문제를 떠나 굳이 서울광장에서의 시위를 보통시민들은 이해하지 못한다.우리는 간혹 정치가 무엇인지,집시법에 무엇이 잘못됐는지,심지어 대통령이 누구인지도 잊고 싶어질 때가 있다.그런 사람들이 느긋하게 드러누워 오후를 즐길 광장 하나쯤 가질 수는 없는 것일까.사시사철 푸른 빛을 잃지 않는다는 켄터키 블루 잔디는 지금도 사람의 발길을 견디기 힘들어 곳곳에 누런 빛을 띠고 있다.매주 월요일을 안식일로 정했지만 하루쯤 쉬는 날을 더 늘린다고,아예 한달쯤 출입금지를 해도 불평할 시민은 없을 것이다.

잔디가 수많은 시위대와 진압경찰에게 짓밟힐 것을 생각하면 슬프다.시위는 다른 곳에서 하면 된다.시민단체들이 이곳에 모여 시위 대신,집회·시위금지구역 선포식을 갖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이곳이 보통 서울시민들의 진정한 광장이 되고,그래서 비라도 내리는 어스레한 저녁이면 우산을 받쳐든 아내와 고즈넉한 광장의 잔디밭을 함께 걷고 싶다.

박춘선 서울시의원, 대한민국 한류 문화산업대상 ‘의정공헌대상’ 수상

서울시의회 박춘선 의원(국민의힘, 강동2)이 지난 15일 열린 ‘2026 대한민국 한류 문화산업대상’ 시상식에서 ‘의정공헌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박 의원은 주민 삶의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환경·교통·교육·복지 등 다방면에서 생활밀착형 의정활동을 전개,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번 수상자로 선정됐다. 박 의원은 주민들 사이에서 ‘강동엄마’라 불릴 정도로 친근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매사 지역 곳곳을 발로 뛰며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생활 속 불편 사항을 즉각 해결하는 등 철저한 ‘현장 중심 의정활동’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제11대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고덕천 정화활동과 한강변 꽃심기, 플로깅 등 주민참여형 환경정책을 추진해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과 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했으며, 고덕강일지구 교통 불편 해소와 대중교통 이용환경 개선, 학교 과밀 및 통학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다. 또한 난임 지원과 저출생 대응 정책 마련 등을 통한 난임부부의 임신 성공률 향상과 저출생 극복을 위한 사회적 기반 마련에 앞장서고 있다. 박 의원은 “이번 수상은 무엇보다 주민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낸 값
thumbnail - 박춘선 서울시의원, 대한민국 한류 문화산업대상 ‘의정공헌대상’ 수상

이기동 논설위원yeekf@seoul.co.kr˝
2004-05-28 39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