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수상] 구상 선생님의 마지막 말 “고마워”/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방송작가

[서울수상] 구상 선생님의 마지막 말 “고마워”/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방송작가

입력 2004-05-20 00:00
수정 2004-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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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아픔 속에서 가고 있다.

중환자실에 계신 구상 선생님께 마지막 병문안을 갔을 때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이내 눈망울이 젖어 드셨다.그때는 하염없이 흘러내린 내 눈물이 반사된 것인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안타까우셨던 것이다.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야 하는 나를 비롯해서 모든 장애인들에게 선생님은 연민을 갖고 계셨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연민’이라고 표현하지 않으셨다.그말이 상처가 될까봐 너털웃음과 함께 ‘연정’이라고 주장하시던 분이다.

선생님은 ‘장애인’이라는 단어도 쓰지 않으셨다.그저 “불편한 사람들이니까.”하는 정도로 말씀하셨다.난 그런 선생님이 너무 좋았다.어쩜 우리의 마음을 그토록 세심하게 이해해 주실 수 있는지 정말 존경스러웠다.

선생님은 솟대문학이 한 호 한 호 나올 때마다 “고마운 일이구먼,정말 고마운 일이야.”라고 격려해 주셨다.선생님은 우리 사회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장애인들이 뭔가를 한다는 것이 대견스러우셨던 것이다.

선생님께서 소천하신 후 각 언론에서 장애인 문예지인 ‘솟대문학’에 2억원을 쾌척했다고 선생님의 선행을 숫자로만 알렸으나,선생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수로 헤아릴 수 있는 돈이 아니다.선생님이 우리 장애문인들에게 주신 것은 사랑이고,희망이고,에너지다.선생님은 장애문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글을 쓸 수 있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고,장애문인들이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고,그 기반을 다져 주셨다.

선생님은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시다.스승이란 정신적으로 영양분을 공급해 주어 성장할 수 있도록 해 주는,인간의 성숙을 관장하는 구실을 하는 분인데,선생님은 그일을 너무나 성실히,너무나 완벽하게 해 주신 최고의 스승이시다.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난 쉴 새 없이 많이 얘기를 했다.회원들 소식,솟대문학에 관한 계획,그리고 더 열심히 솟대문학을 만들겠다는 약속까지 모두 보고를 드렸다.선생님은 오른쪽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인사를 하셨다.(호흡기를 꽂아 말씀을 하실 수 없었기에 글씨를 써서 대화)

“고마워.”

이 한 마디가 구상 선생님의 사상과 문학과 철학의 키워드이다.선생님은 늘 낮은 자세로 작은 일에조차 고마움을 느끼며 사셨다.선생님은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늘 격려하였고,모든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인 양 끌어안고 사셨다.그것이 진실이었기에 더욱 아름답고 더욱 빛이 난다.

요즘 장애인계는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한 장애인 시설에서 30세가 넘은 중증 장애인을 발가벗겨 놓고 목욕 봉사를 하는 장면을 연출한 것에 거센 항의를 하고 있다.목욕 봉사 한번으로 민생을 돌보는,장애인을 사랑하는 지도자로 행세하려 한 것은 기만이다.선행은 연출이 아니고 진실이다.난 그것을 구상 선생님한테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없는 살림에 2억원을 내놓으시며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내세우지 않으신 것은 행위에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선생님의 행동은 꾸밈이 없으셨다.

구상 선생님은 비단 같이 고운 꾸며진 말(綺語)을 경계하시고 참말만을 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당신 스스로 참말과 참행동을 실천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의 가슴에 파고드는 영원한 가르침이 되었다.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 남긴 마지막 말씀인 “고마워.” 역시 선생님의 진실이 가득 담긴 교훈이다.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모든 일에 고마워하면서 서로 돕고 살라는 당부의 말씀인 것이다.

방귀희 솟대문학 발행인 방송작가˝
2004-05-20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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