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역대 정권의 개혁 실패 이유/강형기 충북대 교수·한국지방자치학회 명예회장

[열린세상] 역대 정권의 개혁 실패 이유/강형기 충북대 교수·한국지방자치학회 명예회장

입력 2004-05-19 00:00
수정 200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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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은 낙엽처럼 살자’는 것이 자신의 생활 모토라는 한 공무원이 생각난다.낙엽이 비에 젖어 바닥에 붙어 있으면 빗자루로 쓸어도 좀처럼 쓸려나가지 않는 것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들고 나오는 개혁정국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가만히 엎드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유리창을 닦지 않으면 유리창을 깨지 않을 것이고 설거지를 하지 않으면 접시를 깨지 않는다면서 될 수 있는 한 정권의 힘이 빠질 때까지 엎드려 있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는 것이었다.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 정권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나라의 미래보다는 자신들의 현재에 초점을 두고 개혁안을 입안한 경우가 많았다.현실을 가슴에 품고,현장에 서서,현물을 접하면서 정책을 만들기보다는 그저 작문으로만 한 개혁도 많았다.당장 어렵다고 단기 땜질로 대처한 결과 얼마 후에는 오히려 더욱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한 경우도 많았다.미봉책이 새로운 미봉책을 요구하게 했던 것이다.

진정한 개혁은 현실의 어려움을 모면하려는 것이 아니라 앞날에 대한 희망을 연출하는 것이다.개혁은 미래의 세대를 위한 가장 적극적인 선물이다.개혁은 생명의 새로운 기운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지금 우리의 목표가 일시적으로 그럭저럭 좋은 세월을 보내는 것이라면 기존의 좋은 법과 관례만을 준수하면 될 것이다.우리의 목표가 미래 세대의 행복까지도 생각한 것이라면 우리는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그러나 역대 정권들의 개혁정책에는 개혁자체를 선전하는 것이 그 주된 목적인 것이 많았다.그래서 우리를 새롭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개혁의 앞길에는 3가지의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제도의 벽과 물리적인 벽,그리고 의식의 벽이 그것이다.개혁이란 이러한 3가지의 벽을 허무는 것이다.이 중에서도 의식의 벽을 허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의식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정보를 공유하고,다양한 참여로 힘을 모으며,현장을 중시하면서 국민에 대한 사랑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개혁의 왕도는 정보공유와 참여에 있는 것이다.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은 ‘왜 개혁을 해야 하는지’를 공감시키고 미래의 가치를 공유시켜 개혁에 동참하게 하는 길이다.개혁이 성공하려면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그리고 이러한 목표를 공감시키고 그 미래의 가치를 공유시켜야 한다.그러나 역대 정부가 펼친 대부분의 개혁은 일부의 핵심요원들만이 주동이 되어 종이와 연필로 한 것이었다.따라서 고쳐야 할 모든 것은 국민과 기업,그리고 지방이라는 생각으로 개혁에 임했으면서도 현장의 지지를 받지 못해 결국은 작문으로서 하는 개혁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국민들이 개혁의 취지와 목적,참여할 방법을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개혁은 성공할 수가 없다.역대 정부의 개혁과정에 목청을 돋운 것은 예외 없이 부처의 이익을 위해 똘똘 뭉친,조직에 예속되어 다른 세계를 보지 못하는 공무원과 정부기관들이었다.그 결과는 허망했다.우리 국민이 편리한 여객수송이나 따뜻한 난방 대책을 요구할 때에도 마차생산업자나 화로공급자들만이 모여서 자신들의 대책을 마련하듯이 기관의 입장만으로 일관한 개혁은 성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개혁 주도부처의 조정력 강화와 국민의 참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의 조직을 개혁하는 힘은 3가지에서 나온다.구성원의 위기감 공유에 의한 개혁,이념의 공유에 의한 개혁 그리고 개혁 주체의 리더십에 의한 개혁이 그것이다.그러나 현재 우리의 상황은 개혁주체의 리더십이나 이념에 의한 것만으로 정부개혁이 실현될 단계가 아니다.이제는 보다 많은 국민들이 우리의 한계와 실상을 이해하고 위기상황을 절감하게 함으로써 국민이 지지하고 참여하게 해야 한다.그리고 정말 명심해야 할 것은 당장의 어려움을 면하고자 과거처럼 다시 미봉책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이제 우리는 역대 정부가 개혁에 실패했던 전례를 다시는 답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강형기 충북대 교수·한국지방자치학회 명예회장˝
2004-05-19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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