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책과 장미/신연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책과 장미/신연숙 논설위원

입력 2004-04-16 00:00
수정 2004-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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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3월8일이면 러시아에 빨간 장미가 동난다.여성의 날을 맞아 남편이 아내에게 장미를 선물하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장미 선물은 1908년 3월8일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여성노동자들의 파업 시위와 관련이 있다.1만 5000명의 여성들이 노동시간 단축,임금 인상,아동노동 금지를 요구하며 내건 슬로건이 ‘빵과 장미’였다.빵은 ‘직업과 경제적 안정’을,장미는 ‘더 나은 삶의 질’을 의미했다.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오늘까지도 만족한 삶을 보장받지 못한 많은 여성들은 세계 도처에서 같은 날,빨간 장미의 행진을 벌인다.

스페인의 북동부 카탈루니아 지방에서는 해마다 4월23일이면 저마다의 손에 책과 장미를 든 연인,가족,친구들로 도시가 흥분에 휩싸인다.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의 사망일이기도 한 이날을 기해 ‘책과 장미의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광장이나 공원에선 다양한 공연과 함께 저자들이 특별판매 행사를 펼치기도 하고 책을 사는 독자에겐 붉은 장미 선물이 주어진다.책은 ‘고결한 지성’의 상징이며 붉은 장미는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새겨진다.

그러나 장미는 보통 뜨거운 정열과 사랑의 상징으로 통한다.이에 반해 책은 효과가 천천히,늦게 나타나는 매체이다.문화수준이 높은 카탈루니아 사람들은 느린(slow) 매체의 전형인 책에 장미의 강렬한 동적(動的) 이미지를 결합시킴으로써 젊은이들을 서점 앞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과 장미의 축제가 국내에서도 열린다.유네스코가 스페인 ‘책과 장미의 축제’에 착안,4월23일을 ‘세계 책의 날’로 선포한데 따라 국내 출판계에서도 책과 장미 무료 증정 행사를 벌이는 것이다.작가와의 만남,유명연예인 사인회 등 여러가지 이벤트도 마련돼 있다고 한다.이 축제가 자리잡아 ‘책의 날이면 전국의 붉은 장미가 동나는’ 상황을 상상해 본다.그러기에는 국민 30%가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 우리 독서 문화가 너무 열악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그러나 책을 안 읽고,안 보고 우리가 어떻게 지식산업 시대에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그런 의미에서 ‘책의 날’ 축제를 출판·서점업계에 맡기지 말고 저자,교육계,기업,시민문화 단체 등이 모두 참여하는 전국적 축제로 만들면 어떨까.밸런타인데이 이상으로 책의 날 축제가 성공한다면 우리나라의 독서율도 쑤욱 올라가지 않을까.

신연숙 논설위원˝

2004-04-16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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