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문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서울시내 남대문 옆 로댕갤러리에 가서 입장료 2000원만 내면 지옥문 저편 끔찍한 장면들을 실컷 볼 수 있다.로댕의 필생의 역작 ‘지옥문’은 거푸집 주형으로 모두 7개가 만들어져 파리 로댕미술관,필라델피아 로댕미술관을 비롯,세계 각지에 보관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칼레의 시민’과 함께 서울 로댕갤러리에 상설전시돼 있는 것이다.
지옥문에는 단테의 ‘신곡’을 토대로 200여 인간군상이 그려내는 아비규환의 장면들이 반복 조각돼 있다.육욕의 죄를 지어 영원히 잡을 수 없는 여인을 뒤좇는 ‘허무한 사랑’.아이들의 주검앞에 절규하다 배고픔을 못이겨 결국 그 시신을 먹는 ‘우골리노와 아이들’.지옥문 입구에 써있는 ‘이곳에 들어가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의 문구를 형상화한 세 망령,생각하는 사람….
불교의 지옥은 보다 사실적이다.목련경은 부처의 10대 제자중 가장 신통력이 뛰어났다는 대목건련이 쓴 지옥견유기.18개 아비대지옥의 하나인 검수지옥(劍樹地獄)은 사방이 날카로운 칼날로 뒤덮인 나무에 매달려 고통받는 중생들이 사는 지옥.맷돌로 죄인을 갈아 고통을 주는 석할지옥(石割地獄)도 있다.쉴 틈 없이 계속 고통받는 지옥을 통칭 아비대지옥,그 고통을 못이겨 중생들이 지르는 소리를 일컬어 아비규환(阿鼻叫喚)이라 부른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지도자 셰이크 아흐마드 야신을 살해한 데 대해 하마스 지도부가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지옥문을 열었다.”는 말로 피의 보복을 선언했다.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자살폭탄 테러로 이스라엘인들을 살해한 데 대한 보복으로 야신을 죽였다고 주장한다.공격을 당하면 그 열배의 보복으로 되갚는 게 양측의 생존논리.이스라엘 건국 후 반세기를 그렇게 죽고 죽여왔다.
지난 3년여 계속된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봉기)기간중 양측 사망자가 4000여명.야신 장례식에 20여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유대인 전멸 때까지 서로 순교자가 되겠다고 외쳐댔다.지난 살육의 역사 동안 두 민족 모두 사실상 지옥문 저편에서 살아온 셈.‘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중동문제는 한 영토에 두 민족이 함께 살아야 하는 숙명이 만들어낸 문제.누가 누구를 더 탓하랴.서로 공존의 지혜를 모으는 것 외에는 길이 없어 보이는데,그게 안 되는 게 또 인간의 역사인가 보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
지옥문에는 단테의 ‘신곡’을 토대로 200여 인간군상이 그려내는 아비규환의 장면들이 반복 조각돼 있다.육욕의 죄를 지어 영원히 잡을 수 없는 여인을 뒤좇는 ‘허무한 사랑’.아이들의 주검앞에 절규하다 배고픔을 못이겨 결국 그 시신을 먹는 ‘우골리노와 아이들’.지옥문 입구에 써있는 ‘이곳에 들어가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의 문구를 형상화한 세 망령,생각하는 사람….
불교의 지옥은 보다 사실적이다.목련경은 부처의 10대 제자중 가장 신통력이 뛰어났다는 대목건련이 쓴 지옥견유기.18개 아비대지옥의 하나인 검수지옥(劍樹地獄)은 사방이 날카로운 칼날로 뒤덮인 나무에 매달려 고통받는 중생들이 사는 지옥.맷돌로 죄인을 갈아 고통을 주는 석할지옥(石割地獄)도 있다.쉴 틈 없이 계속 고통받는 지옥을 통칭 아비대지옥,그 고통을 못이겨 중생들이 지르는 소리를 일컬어 아비규환(阿鼻叫喚)이라 부른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지도자 셰이크 아흐마드 야신을 살해한 데 대해 하마스 지도부가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지옥문을 열었다.”는 말로 피의 보복을 선언했다.이스라엘군은 하마스가 자살폭탄 테러로 이스라엘인들을 살해한 데 대한 보복으로 야신을 죽였다고 주장한다.공격을 당하면 그 열배의 보복으로 되갚는 게 양측의 생존논리.이스라엘 건국 후 반세기를 그렇게 죽고 죽여왔다.
지난 3년여 계속된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봉기)기간중 양측 사망자가 4000여명.야신 장례식에 20여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유대인 전멸 때까지 서로 순교자가 되겠다고 외쳐댔다.지난 살육의 역사 동안 두 민족 모두 사실상 지옥문 저편에서 살아온 셈.‘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중동문제는 한 영토에 두 민족이 함께 살아야 하는 숙명이 만들어낸 문제.누가 누구를 더 탓하랴.서로 공존의 지혜를 모으는 것 외에는 길이 없어 보이는데,그게 안 되는 게 또 인간의 역사인가 보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
2004-03-24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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