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 더 손봐야”

전문가들 “잊힐 권리 가이드라인 더 손봐야”

입력 2016-03-25 15:57
업데이트 2016-03-25 16:46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방통위 토론회…“반쪽짜리 권리…법적 근거·실효성 의문”

정부가 마련한 이른바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 가이드라인’에 대해 학계와 법조계, 인터넷 업계 전문가들은 대부분 설익은 방안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5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서울에서 토론회를 열고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가이드라인’ 초안을 공개했다.

접근배제란 글·사진·동영상 같은 게시물을 다른 사람이 보거나 검색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를 뜻한다. 이번 가이드라인 마련 과정에서 방통위가 만든 말이다.

이상직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토론회에서 방통위의 가이드라인은 자기게시물에 한해서만 잊힐 권리를 현실화하는 것으로 소위 ‘반쪽짜리’ 권리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제3자의 게시물에 대한 잊힐 권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표현의 자유, 알 권리와의 갈등을 고려한 것으로 우리나라 사정상 부득이한 조처로 이해된다”면서도 “방통위의 가이드라인은 유럽 등에서 이뤄지는 잊힐 권리 논의보다 매우 후퇴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아동, 청소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경우 제3자의 게시물이 적법하다고 하더라도 그 게시물로 인해 학업, 취업 등에서 고통을 얻을 수 있는데 이 부분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게시판, 자기게시물 등의 범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이드라인이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오병철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예를 들어 인터넷 신문에 대한 기고문이나 댓글은 게시물에 속하지만, 그 자체로 언론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면서 “과거 게시판 스타일의 서비스를 전제로 하는 범위 설정으로는 규율 범위에 대한 논란을 촉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기게시물 범위와 관련해서도 “타인이 작성해 게시한 자신에 관한 게시물이나 타인이 작성했지만, 자신이 게시한 게시물의 경우 누구에게 통제권이 있는지 판단하기 힘들다”며 “자기게시물에 대한 정교한 범위 설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터넷 업계는 애당초 가이드라인의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차재필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실장은 “(방통위) 가이드라인은 법률상 대원칙의 세부적인 설명 등을 위한 법적인 근거가 미약하다”며 “일반 국민이 가이드라인이라는 제목으로 말미암아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방통위가 내건 유럽의 사례 역시 가이드라인의 근거로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곁들였다.

차 실장은 “유럽의 사례는 타인이 작성한 게시물에 대한 내용이고 방통위 가이드라인은 자신의 글에 관한 내용”이라면서 “가이드라인과 관련된 해외의 법 제도나 선진 사례가 없어 도입의 목적,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진규 네이버 개인정보보호팀장은 “잊힐 권리는 개인이 자신에 대한 정보에 대해 갖는 절대적 권리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검색어로 해 노출되는 검색 결과에 대한 삭제 요청권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준이 애매모호할 때 사업자가 취할 행동은 하나다. 그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라며 “좀 더 세련되고 정교화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정 포털사이트에서 회원을 탈퇴한 이용자가 과거에 자신이 올린 게시물에 대한 권리를 요구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찬반 논란도 제기됐다.

이에 오병철 연대 교수는 “계약관계가 끝났다하더라도 과거에 올린 게시물에 대한 권리는 그대로 인정하는 게 법리에 맞다”고 설명했다.

자기게시물에 대한 정보 접근권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어쨌건 정부가 이러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 자체에 의의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고환경 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방통위 가이드라인은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자기게시물 접근해제 요청권 행사에 관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일단 제정된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잊힐 권리라는 새로운 권리의 인정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이견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므로 가이드라인의 필요성과 실효성과 관련해 여러 비판적인 시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엄열 방통위 개인정보보호 윤리과장은 가이드라인 제정 배경에 대해 “자기게시물로 인한 취업, 결혼 등 여러 사회적 활동에서 불이익을 보는 상황이 잇따르고 있다”면서 “자기가 올린 게시물은 당연히 내릴 수 있어야한다는 논리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이기주 방통위 상임위원은 토론회 말미에서 “법적 근거나 기술적 한계가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을 일단 만들어 본 것”이라며 “결론적으로 방통위와 사업자, 이용자들이 접점을 찾아 문제를 보완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접근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
종부세 완화, 당신의 생각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1가구 1주택·실거주자에 대한 종부세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종부세 완화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완화해야 한다
완화할 필요가 없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