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호 칼럼] 박유하 8년 재판이 던지는 질문/논설실장

[진경호 칼럼] 박유하 8년 재판이 던지는 질문/논설실장

진경호 기자
진경호 기자
입력 2023-11-01 01:27
수정 2023-11-01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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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명예훼손 ‘무죄’
8년 재판은 사유에 대한 ‘구금’
과거사 담론 진전 가로막은 쟁투
‘지연된 정의’는 그 자체로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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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호 논설실장
진경호 논설실장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에 대한 8년 재판이 ‘무죄’ 두 글자를 남기고 마침표를 찍었다.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하는 게 타당한 저자의 표현은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가 2심 유죄 판결을 파기환송하며 내놓은 결론이다. 2014년 6월 위안부 피해자 9명의 고소, 2015년 11월 검찰의 박 교수 기소, 2017년 1월 1심 무죄 판결, 2017년 10월 2심 유죄 판결의 굽이를 돌아 대법원의 6년 ‘장고’(長考)로 이어진 이 사건의 결말은 당연해서 허망하고, 간결해서 잔인하다.

대법원은 ‘제국의 위안부’에 담긴 ‘자발적 매춘’ 등의 서술이 강제 연행이나 일본의 책임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전문가와 시민들이 자유롭게 상호 검증할 사안”이라 했던 1심 판결에서 한두 걸음 더 나아간 이 판단을 김명수 대법원은 임기 내내 가둬 두었다. 주심 노정희 대법관이 쥐고 있었던 시간만 5년 2개월이다. 이들의 문해력이 심각히 낮았던 게 아니라면 이 오랜 재판과 정의의 지체는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이 질문은 우리의 시선이 ‘박유하는 무죄’라는 판결에만 머물 수 없는 이유로 향한다.

대법원 판결 직후 박 교수는 페이스북에 “위안부 할머니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저의 싸움이었다”고 썼다. ‘주변 사람들’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상임대표 윤미향·현 정의기억연대) 사람들임은 지난해 세종대 교수 정년퇴임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의 지적은 외연을 좀더 넓힐 필요가 있겠다.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훼손하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희석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견해도 용인하지 않는, 위안부 담론을 독점하고 이를 권력으로 치환한 ‘위안부 주변인들’이 한일 과거사 해결의 진전을 가로막은 보다 큰 틀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박 교수가 고소를 당한 2014년 6월은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에 분주했던 시기다. 이 문제가 해결의 물꼬를 터 가던 시점의 한켠에서 박유하 고소와 같은 위안부 주변인들의 ‘저항’이 시작된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가 한 명이라도 더 살아 있을 때 합의를 끌어내려 한 박 정부와 달리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법적 책임이 훼손되는 합의를 일절 배격해야 하는 이 주변인들에게 박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12월 양국의 위안부 합의가 결실을 맺었으나, 이들이 주도한 수요집회와 소녀상 설치가 들불처럼 번져 가던 사회 분위기에서 박유하류의 이견은 설 땅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이 주변인들의 동심이체(同心異體)답게 출범 두 달도 안 돼 위안부 합의 파기에 나섰고, 결국 2018년 11월 화해치유재단 해산 방침 결정, 2019년 7월 재단 해산 등의 수순을 밟으며 위안부 합의를 껍데기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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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득권을 위해 사회적 담론의 발전을 가로막는 무리와 이들을 뒷배 삼은 정권의 퇴행적 행각을 대법원은 “박유하는 무죄”라는 판결을 묶어 두는 것으로 ‘방조’했다. 지체된 박유하 재판은 그래서 학문의 자유 논쟁이 아니라 과거사를 정체성 발현의 수단으로 삼은 정치사회 진영의 쟁투로 해석돼야 한다. 지난 8년 박 교수는 형사 고소라는 합법적 사법 행위의 틀로 포장된 권력의 ‘가해’에 포박돼 있었고, 무죄 판결을 받은 게 아니라 구금에서 풀려난 것이다. 고소 하나로 누군가의 사유와 표현을 구금할 수 있다는 것,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런 고소고발이 마구잡이로 자행되고 있다는 것, 늑장 판결에 따른 피해와 이득을 사법부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노정희 대법관은 정년퇴임 직전의 정의로운 판결로만 기록될 뿐이라는 것, 대개의 우리는 이를 바라만 봤을 뿐이라는 것, 이게 박유하 사건이다.

2023-11-0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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