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그 이불을 덮고/나희덕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그 이불을 덮고/나희덕

입력 2016-09-23 18:08
수정 2016-09-23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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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불을 덮고/나희덕

노고단 올라가는 양지녘
바람이 불러모은 마른 영혼들

졸참나무잎서어나무잎낙엽송잎당단풍잎
느티나무잎팽나무잎산벚나무잎나도밤나무잎

그 이불을 덮고
한겨울 어린 풀들이
한 열흘은 더 살아간다

화엄사 뒷산
날개도 다 굳지 않은 날벌레들
벌써 눈뜨고 날아오겠다

그 속에 발 녹인 나도
여기서 한 닷새는 더 걸을 수 있겠다

형태적으로는 짧지만 읽는 이들의 마음을 덮어 주는 데에는 부족함이 하나 없는 시입니다. 이는 땅에 떨어진 나뭇잎을 무용과 소멸이 아니라 쓸모와 생명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 덕분일 것입니다. 늦가을이나 초겨울 들녘 산중에 쌓인 낙엽을 들췄을 때 그 안에 시기를 잘못 알고 돋아난 어린잎들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요. 우리는 큰 생각 없이 그 장면을 스쳐 갈 뿐이고요. 다행스럽게도 시인은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한 편의 시를 써 냈습니다. 아마 시인은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잘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보는 사람일 것입니다.

얼마 전 경북 칠곡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연일 언론에서 낙동강 오염이 심각하다는 보도를 접한 터라 역에 내리자마자 칠곡보로 향했습니다. 다 죽었을 거라고, 지금 가는 길의 끝에는 죽음이 널려 있을 거라고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도착했을 때 제 상상은 깨졌습니다. 녹조는 심각했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생명이 있었습니다. 빗물이 강으로 흘러드는 오수관 앞마다 작고 큰 물고기들이 몰려들어 숨을 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여름. ‘한 열흘’ 그곳에서 견딘 물고기들도 갑자기 선선해진 가을 날씨를 반기고 있을 것입니다.

박준 시인
2016-09-2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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