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종횡무진] ‘귀족스포츠’란 말 함부로 하지 맙시다

[정윤수의 종횡무진] ‘귀족스포츠’란 말 함부로 하지 맙시다

입력 2009-08-19 00:00
수정 2009-08-19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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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비평으로 유명한 진중권씨의 취미 생활은 ‘뜻밖에도’ 비행기 조종이다. 비행기라, 우선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데 실은 초경량 비행기다. 극도로 심신이 피로하던 어느 때 갑자기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못 이겨 이 세계에 뛰어 들었다. 물론 ‘초경량’에 ‘중고’라고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곧잘 ‘귀족 스포츠’로 오해되지만, 진짜 귀족이나 큰 부자들은 이런 초경량에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진씨는 자동차도 없고 운전면허도 없다. 차를 살 돈으로 중고 비행기를 장만하였고 그것을 타기 위해 김포의 집에서 화성 비행장까지 버스와 전철을 타고 대여섯 시간씩 간다. 돈이나 시간이 남아 돌아서가 아니라 홀로 창공을 날고 싶다는 집념과 열정이 넘쳐 흐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 부산 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할 때 취미 생활이 요트였다. 요트 역시 ‘귀족 스포츠’로 알려져 있는데 이 일로 정치 초년생 때 고인은 유력 일간지와 맞붙은 일이 있다.

당시 어느 일간지에서 발행하는 주간지가 고인을 겨냥해 ‘귀족 스포츠인 요트를 즐긴다.’는 기사를 썼고 이에 고인이 제소하여 승소했다. 대선 과정에서는 경쟁자인 이인제 후보가 다시 이 문제를 꺼내 ‘귀족 스포츠를 즐기는 서민 후보가 말이 되느냐.’는 식으로 공박했다.

이 모든 전투에서 고인은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가슴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요트 선수들이나 동호인들이다. 국가대표 요트팀 지도자인 박기철씨는 “요트는 근대올림픽과 역사를 같이 하는 스포츠로 전혀 귀족적이지도 않으며 바다를 사랑하지 않으면 돈을 줘도 할 수가 없는 힘든 운동”이라고 말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즐겼다’는 요트 또한 “바람 부는 광안리 바닷가에서 모래까지 들어간 라면을 먹어가며 행복해 했던” 것이라고 증언한다. 이는 요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공통의 추억이다. 멀리서 볼 때는 한가롭게 세월을 보내는 것 같지만 “언제 뒤집힐지 모르는 요트를 타고 균형을 잡기 위해 험한 파도 속을 헤치고 나가는 일”이라고 박기철씨는 말한다.

물론 어느 종목이든지 명품파와 실속파가 있다. 그 흔한 축구화에도 20만원이 넘는 고가품이 많으며 스키나 골프처럼 장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종목은 수백만원을 쉽게 넘긴다. 요트에는 기관을 이용하고 호화로운 선실까지 갖춘 파워 요트가 있고 돛과 바람으로 이동하는 세일링 요트가 있다. 세일링 요트는 ‘귀족’과 거리가 멀다.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다고 해서 덮어 놓고 ‘귀족 스포츠’라고 딱지를 붙여서는 곤란하다.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도 ‘귀족 스포츠’ 얘기가 잠시 나왔다. 그가 어느 수준의 요트를 즐겼느냐는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만약 일정한 도를 확실히 넘어 ‘화려한’ 수준이거나 공무와 연관된 경우가 있다면 반드시 캐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귀족 스포츠’ 논란으로 전국의 1만여 동호인들이 지인들로부터 ‘세월 좋다.’는 근거 없는 핀잔을 듣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들 역시 돈과 시간이 남아 도는 한량이 아니라 집념과 열정이 넘쳐 흐르는 청춘들이다.

스포츠 평론가 prague@naver.com



2009-08-19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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