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쇄신을 요구하는 정치권을 향해 라디오 연설을 통해 주목할 만한 화두를 던졌다. “민심은 여전히 이념과 지역으로 갈라져 있다. 상대가 하면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정쟁의 정치문화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사실 별로 달라진 것은 없다. 이런 고질적인 문제에는 대증요법보다는 근원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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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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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하지만 청와대는 “국면전환형 쇄신은 없다.”는 말만 내세우며 아직까지 처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참다못해 한나라당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은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의 조속한 개편, 박근혜 전 대표의 국정동반자 관계 약속 이행, 탈이념과 중도실용의 정신에 입각한 국정기조 재확립 등이 포함된 쇄신 제언을 발표했다. 왜 대통령은 화두만 던진 채 정치권과 민심의 요구를 적절히 묵살하면서 상황을 주도하지 않는 것일까? 대통령의 상황에 대한 인식의 오류가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
첫째, 경제가 좋아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믿음이다. 정부는 “한국이 제일 먼저 경제 위기에서 탈출할 것이다.”라는 해외 경제 기구들의 장밋빛 전망에 고무되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경제 지표가 좋아진다고 서민 경제가 좋아진다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참여정부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참여정부 5년 재임기간 동안 연 평균 4.2% 경제성장, 외환 보유고 2000억달러, 주가 2000포인트 달성 등 외형적인 경제 지표는 상당히 좋았다. 그러나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경제를 망쳤다고 인식했다. 경제 지표는 좋았지만 사회 양극화는 심화되면서 민심이 급속하게 이반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박근혜 전 대표는 결코 한나라당을 탈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1990년 3당 합당, 97년 DJP연대,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등 한국 정치에서 불가능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대선 승리를 위해 한나라당을 탈당해 동서연합을 기치로 김대중 전 대통령 세력과 연대할 수도 있다. 만약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내년 지방선거 전에 실현된다면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소수 정권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셋째, 올해가 정치적인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MB식 정치를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집착이다. 따라서 정치 논리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려서는 안 되며 무리를 해서라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욕구가 강하다. 문제는 이러한 경직성과 강박감으로 인해 정치로 풀어야 할 일을 정치로 풀지 못하고 종종 타이밍을 놓치면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정치적 미숙함을 연출했다. 동시에 “독재시대의 권위주의로 회귀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넷째, 국민들은 여전히 성장과 효율 등 보수 가치를 지지하고 보수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는 기대이다.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진보가 진보에 대해 ‘좋다’는 비율은 72.2%인 반면, 보수가 보수에 대해 ‘좋다’는 비율은 33.1%에 불과했다. 한편 중도층에서는 ‘진보가 좋다’는 비율은 28.5%인 반면 ‘보수가 좋다’는 비율은 19.3%에 불과했다.
정권 교체 1년 반 만에 보수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과이다. 인식과 전제가 잘못되면 올바른 진단은 물론 내실 있는 처방이 나올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국정쇄신을 위한 ‘근원적 처방’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분명해졌다.
제도와 인사 개편은 부차적인 것이고 대통령 인식의 근원적인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때만이 지혜의 눈이 비로소 열리고 ‘거꾸로 가는 정부, 대답 없는 정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국민의 신뢰를 받는 올바른 처방이 도출될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2009-06-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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