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 사드’ 이데올로기…

‘마라, 사드’ 이데올로기…

입력 2009-05-16 00:00
수정 2009-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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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실에 참여하기를 포기했어. 나의 삶은 환상이야. 혁명엔 더 이상 흥미가 없어.”(사드) “틀렸소, 사드. 틀렸소.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어떠한 벽도 허물지 못합니다.”(마라)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이 통치하던 1808년 파리 근교의 샤랑통 요양원. 연극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려는 원장의 뜻에 따라 연극 연습이 진행 중이다.

외설과 잔혹한 글쓰기 등으로 요양원에 갇힌 사드 후작의 지도 아래 정신병자, 정치범 등 수용자들이 1793년에 일어난 혁명가 마라의 암살에 관한 내용을 연기하고 있다.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 사드는 극에 개입해 끊임없이 마라와 정치적 논쟁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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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현대 유럽연극의 교과서로 불리는 독일 극작가 피터 바이스의 ‘마라, 사드’는 프랑스 혁명기 실존 인물인 장 폴 마라와 사드 후작의 혁명과 정치, 삶과 죽음에 관한 대립적 시각을 극중극 형식을 빌려 풀어낸 작품이다. 브레히트의 서사극 기법과 아르토의 잔혹극을 절충한 독특한 구성에 음악극적 요소를 접목한 문제작으로 1964년 세계적 연출가 피터 브룩에 의해 공연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서울시극단(단장 김석만)이 ‘마라, 사드’(29일~6월14일, 세종M씨어터)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다. 원제가 ‘사드씨의 지도하에 샤랑통 요양원의 연극반이 공연한 장 폴 마라에 대한 박해와 암살’인 이 작품이 국내에서 공연된 건 2002년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때 러시아 타강카극단의 초청 공연이 유일하다.

박근형 연출이 지휘봉을 잡은 ‘마라, 사드’는 근래 보기 드문 대작 연극이다.

출연배우가 40명에 이르고, 원작 희곡의 음악극 요소를 살려 공연 내내 라이브 연주가 극의 중요한 흐름을 담당한다. 삼류 인생들의 소소한 일상에서 삶의 진정성을 건져 올리는 소극장 연극을 주로 선보여온 박 연출에겐 새로운 도전인 셈.

그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워낙 정치성이 강하고, 표현이 센 작품이라 엄두를 못 냈다.”면서 “혁명을 화두로 한 연극이 현재 시점에서도 유효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마라와 사드는 실존 인물이지만 둘의 대립 구도는 상상의 산물이다. 급진당 자코뱅의 당의장이던 마라는 온건개혁파인 지롱드의 여성 당원 코르데에게 욕실에서 암살당한다. 혁명 동지였던 화가 다비드의 그림 ‘마라의 죽음(작은 사진)’은 암살 당시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디즘’이란 말을 유래시킨 사드는 실제 샤랑통 정신병원에서 자신의 연극을 공연했다고 한다. 피터 바이스는 혁명의 격동기인 1793년 마라의 욕실과 공포정치 시대인 1808년 정신병원을 한 공간에 포갠 뒤 혁명주의자 마라와 냉소주의자 사드를 격하게 대립시킨다.

박 연출은 “혁명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 했던 마라와 혁명의 부조리함을 지적하면서 시민 스스로의 각성을 촉구한 사드는 결국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혁명의 광기와 정신의 광기가 공존하는 무대는 그로테스크한 열기를 뿜어낸다.

극중극이 끝나고 수용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결말 부분은 그 기이한 에너지가 폭발하는 하이라이트다. 김주완과 강신구가 각각 마라와 사드로 열연한다.

공연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라, 사드’ 특강도 열린다. 2만~3만원. 1544-1887.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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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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