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의 영화만화경]‘순결에 대한 강박’ 코미디·호러로 버무려

[이용철의 영화만화경]‘순결에 대한 강박’ 코미디·호러로 버무려

입력 2009-01-17 00:00
수정 2009-01-17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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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는 ‘바기나 덴타타(Vagina Dentata)’, 즉 ‘이빨 달린 질’을 가진 십대소녀의 이야기다.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이야기란 말인가.

혼전순결운동에 열심인 던은 요즘 부쩍 솟구치는 욕망 때문에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가 힘들다. 어느 날 던과 남자친구가 은밀한 곳으로 놀러 가는데, 갑작스레 그녀를 덮치려던 소년의 성기가 그만 잘려나가고 만다. 섹스와 몸이 초래한 불안감에 사로잡힌 소녀는 남자들의 신체와 피 묻은 성기를 거치면서 자기 나름의 답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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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미첼 리히텐슈타인이 겉으로 취하는 태도는 시침을 뚝 떼고 엄숙한 척하는 것이다. 심리학을 불러내고, 옛 신화를 들먹이는 ‘티스’는 거세에 대한 공포와 근친상간의 금기와 순결에 대한 강박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한다. 이때 감독이 그런다고 덩달아 심각해진다면 웃음거리가 따로 없다. ‘티스’가 얻을 반응 중 최악은 ‘거세되기 전에 몸조심하자.’는 멍청이 남자의 결심이다. 꼭 피를 본 뒤에야 정신을 차리는 치들은 애초에 인간이 아닌 게다.

‘티스’는 동화와 풍자극을 경유해 코미디와 호러영화에 안착하는 작품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거나 딱딱한 자세로 감상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소녀의 티셔츠에 그려진 ‘일각수’ 같은 노골적인 상징들, 교과서와 종교서적에서 뽑아낸 듯한 뻣뻣한 대사들, 순진을 가장한 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배우들이 웃음을 자아내고, 돌연변이 신체가 “똑바로 살지 않으면 죽이겠다.”며 귀엽게 위협하는 영화가 바로 ‘티스’다. 큰소리로 웃거나 깜짝 놀라는 것이 이런 영화에 대한 최선의 인사라 하겠다.

이쯤에서 물어보자. 쉰이 넘은 남자가 왜 괴상한 영화를 장편 데뷔작으로 선택했을까? 영화의 소재는 주류영화들이 오래전에 폐기처분한 것이고, 피와 괴성으로 범벅된 하이틴호러가 중년 남자의 새 출발점으로 어울릴 것 같지도 않다. 이안의 ‘결혼피로연’에서 게이 파트너 역할을 연기하며 관객과 친숙해진 리히텐슈타인은 팝아트의 선구자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아들이다. 그런 배경을 안 연후에는 ‘티스’의 정체성에 고개를 끄덕일 법하다.

잔인하고 짓궂고 저속한 ‘티스’는 러스 메이어와 존 워터스의 도발적이고 불경한 피를 이어받은 작품이다. 두 악동 메이어와 워터스는 점잔 빼는 문화와 인간을 향해 침을 뱉었던 인물들이며, 그들의 영화는 엄숙주의에 빠져 고상한 주제만을 논하던 기성영화에 대항하곤 했다.

‘티스’의 즐거움은 오래전에 잊혀진 싸구려 취향, 무례함의 쾌감과 재회하는 데서 비롯된다. 구역질 나는 신귀족주의의 시대인 21세기에 이런 말썽쟁이 영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은가.

원제 ‘Teeth’, 감독 미첼 리히텐슈타인.

영화평론가
2009-01-17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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