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임⑫] 새덮치기

[속삭임⑫] 새덮치기

입력 2009-01-04 00:00
수정 2009-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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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차다. 급변하는 사회만큼이나 빠르게 변하는 계절이다.

몇 년 전 친구와 서해안 철 지난 해수욕장에서 밤을 새운 적이 있다. 수많은 피서객이 북적거렸던 흔적만 남아 있는 해변, 삐걱거리는 반쯤 파손된 샤워실 문, 그 위에 내리던 낮보다 밝은 달빛의 쓸쓸함이 문득 생각나는 들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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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가 모두 끝난 들판을 계절의 발자국 따라 걷는 일은 쓸쓸하다. 뜰을 비워 마음의 곳간을 채우고 나서도 발걸음 옮길 때마다 자꾸 깊어지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새덮치기는 썰매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우리들의 겨울철 놀이였다. 추수가 끝나면 새들은 들판을 떠나 하나 둘 민가로 날아들기 시작한다. 눈이 오면 상황은 끝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새덮치기를 잘 만드셨다. 노끈을 꼬아 동그랗게 활을 휘어 촘촘히 망을 엮은 후 더 큰 활을 휘어 새끼줄을 두 겹으로 연결하고, 그곳에 미리 만들어 둔 망으로 된 활을 끼우고 큰 활 중간에 짚을 끼운다. 새덮치기가 완성되어 가는 동안 나는 할아버지의 익숙한 손놀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헛기침 서너 번이면 뚝딱 새덮치기 하나를 만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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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새덮치기에 새들이 좋아하는 조 이삭을 달고 잡풀이나 짚단 등으로 새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위장을 해놓으면 긴 기다림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요즈음으로 치면 복권을 사고 결과를 기다리는 그런 기다림의 시간이 내 겨울의 긴 공간을 메워주었다. 지금껏 나의 겨울에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 만들어주신 새덮치기가 있다. 그때 뒤안에 설치해 놓았던 새덮치기는 내 기억 속에서 아직 새들을 기다리고 있다.

해가 막 서산을 넘어가고 있다. 논둑 미루나무 꼭대기에 달려있던 잎들이 우르르 논으로 내려앉는다. 먹이를 찾는 것인가? 어두워질수록 사랑방 군불에서 막 구워낸 참새구이에 묻은 재를 후후 불어 털어내고는 살이 제일 많은 다리와 가슴살을 떼어 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점점 또렷해진다. 엉덩이를 털고 돌아섰다.

겨울이 코앞에 있어서일까? 가슴이 시리다.

글·사진 문근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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