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은 숨을 내뱉으며 고도계를 들여다본다. 해발고도 5483m. 지난 10일 오전 4시30분(한국시간 오전 7시45분)에 저 아래 호수마을 고쿄(4790m)를 출발해 2시간여 기신기신 올랐다. 고도 600m 남짓을 끌어올리는 데 이리도 힘들까. 열 발자국 옮기고 거친 숨을 가다듬으며 올랐다. 두통으로 머리가 조일 듯이 아팠다. 평생 흘릴 눈물과 콧물을 쏟으면서 칼날처럼 쪼개진 바윗돌이 층층이 얹어진 이곳 정상에 위태롭게 올라 360도로 몸을 돌려본다. 동쪽에 세계 최고봉 초모랑마(영어 이름 에베레스트·8850m)가 위용을 드러낸다.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기점이 되는 루클라라는 곳에 4일 첫발을 내디딘 지 6일 만의 힘겨운 여정 끝에 맛본 칼날처럼 날카로운 ‘첫 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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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트레커가 쿰부 히말 트레킹의 숨은 보석이라 할 수 있는 촐라패스 설원을 지쳐 나가고 있다. 짙푸른 하늘 너머가 고쿄쪽, 설원 아래로 계속 나아가면 에베레스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칼라파타르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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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트레커가 쿰부 히말 트레킹의 숨은 보석이라 할 수 있는 촐라패스 설원을 지쳐 나가고 있다. 짙푸른 하늘 너머가 고쿄쪽, 설원 아래로 계속 나아가면 에베레스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칼라파타르 쪽이다.
●고산병우려 하루 트레킹 고도 500m 안팎으로 제한
카트만두 도착 이튿날, 국내선 공항에 새벽 일찍 나가 정오까지 기다렸지만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루클라 계곡을 뒤덮은 구름 탓이었다. 하루 뒤늦게 열린 하늘길을 통해 루클라(2840m)의 텐징 앤드 힐러리 공항에 도착해 트레킹을 시작, 하룻밤은 팍딩(2610m)에서, 다음날은 남체(3440m)에서 잠을 청했다. 고산병을 피하기 위해 하루에 오를 수 있는 고도를 500m 안팎으로 제한한 것을 충실히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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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르파족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남체는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기점이 되는 곳이다. 현지 가이드는 남체에서의 고소적응을 위해 조금 높은 고도의 에베레스트뷰 호텔과 쿰중마을을 돌아오는 짧은 피크닉을 권했다. 이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음날 묵직한 몸을 이끌고 남체 뒤 사나사(3680m)에서 고쿄로 향하는 왼쪽 계곡 길로 따라붙었다. 포르체텡가(3680m)와 마체르모(4470m)란 곳에서 이틀밤을 지낸 뒤에야 다섯 개의 호수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 고쿄에 들어섰다.
고쿄피크에서 사위를 둘러보는 트레커의 눈에 감격이 어리는 것은 당연한 일. 정북방 초오유와 푸모리는 여인네 젖만큼이나 풍부한 적설을 눈부신 햇살에 드러냈다. 서쪽으로는 멀리 콩데를 시작으로 가깝게는 마체르모의 위용이, 초모랑마를 둘러싸고는 로체와 눕체, 그 앞에는 촐라체와 다와체, 성채처럼 견고한 아마다블랑 등이 모두 웅자를 뽐내고 있다. 그리고 고쿄피크 계곡 아래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노줌바 빙하가 퇴적의 증거로 자갈과 돌멩이를 흘러내려 빙하 위에 쌓고 있다. 아랫녁 호수에는 에메랄드빛이 넘실대고.
●빙하 가로질러 악전고투 끝에 당낙 도착
고쿄에서의 환상을 뒤로하고 이번에 노줌바 빙하를 건넜다. 신들의 영역을 내려와 골바람이 계속 치고 올라오는, 시간이 퇴적되는 느낌만 오롯한 빙하를 가로질렀다. 무려 3시간의 악전고투 끝에 당낙이란 곳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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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고도 5430m의 고쿄피크에서 한 트레커가 수만년 세월이 퇴적된 빙하, 고쿄의 산중 호수, 설산을 조망하며 상념에 젖어 있다. 에베레스트의 높은 곳에는 어김없이 기복을 상징하는 휘장이 휘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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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고도 5430m의 고쿄피크에서 한 트레커가 수만년 세월이 퇴적된 빙하, 고쿄의 산중 호수, 설산을 조망하며 상념에 젖어 있다. 에베레스트의 높은 곳에는 어김없이 기복을 상징하는 휘장이 휘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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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도중 어느 마을에서나 만날 수 있는 마니석. 라마교 창시자인 구루 림보체를 기리는 문구들로 대부분 ‘옴 마니 받메 홈’ 같은 문구가 되풀이된다. 행운의 상징인 만(卍)자가 가리키는 방향이 왼쪽이기 때문에 반드시 왼쪽으로 통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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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도중 어느 마을에서나 만날 수 있는 마니석. 라마교 창시자인 구루 림보체를 기리는 문구들로 대부분 ‘옴 마니 받메 홈’ 같은 문구가 되풀이된다. 행운의 상징인 만(卍)자가 가리키는 방향이 왼쪽이기 때문에 반드시 왼쪽으로 통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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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디보체의 한 로지 풀밭에서 야크들이 텐트 사이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왼쪽 두 군데 서있는 텐트는 남녀 화장실. 로지에선 미리 쳐놓은 텐트 안에 트레커들을 잠재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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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디보체의 한 로지 풀밭에서 야크들이 텐트 사이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왼쪽 두 군데 서있는 텐트는 남녀 화장실. 로지에선 미리 쳐놓은 텐트 안에 트레커들을 잠재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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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행기가 루클라의 텐징 앤드 힐러리 공항 활주로를 이륙하고 있다. 내리막 활주로를 이륙하는 순간, 아찔하기까지 하다. 기자가 이곳에 도착한 지 나흘 뒤, 독일인 등을 태운 경비행기가 활주로 담장에 충돌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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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행기가 루클라의 텐징 앤드 힐러리 공항 활주로를 이륙하고 있다. 내리막 활주로를 이륙하는 순간, 아찔하기까지 하다. 기자가 이곳에 도착한 지 나흘 뒤, 독일인 등을 태운 경비행기가 활주로 담장에 충돌하는 참사가 빚어졌다.
이 마을은 초모랑마를 가까이에서 조망할 수 있는 칼라파타르로 옮겨가기 위한 중간 단계로 여겨진 촐라패스의 출발점으로 의미 있었다. 어렵고 힘들기만 한 구간으로 여겼던 곳이 실은 진짜 보석이었다. 시원에서 흘러나온 계곡물을 따라 두 시간여 별빛에 의지해 올랐다. 동틀녁 까무룩하게 떨어지는 능선 너머로 황량한 고원이 머리를 내밀었다.2시간여 씨름 끝에 촐라체를 옆으로 타고 오르는 고갯길, 촐라패스의 위용에 입이 떡 벌어졌다.
저 곳을 어떻게 오르나 싶었다. 하지만 트레커보다 곱절은 무거운 짐을 진 포터들이 슬리퍼나 운동화 만으로도 거뜬히 오르는 것을 보고 젖먹던 힘을 짜냈다. 미끄러지면 끝장인 각도에서 기신기신 올랐다.800m 정도 오르는 데 세 시간은 넘게 걸렸던 것 같다.
마지막 200m는 눈부시게 하얀 눈이 얹혀져 그야말로 위태위태한 순간을 맞아야 했다. 안간힘을 내서 올랐더니 쉬 잊을 수 없는 대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우리네 운동장 크기만 한 만년설이 펼쳐지고 그 밑 크레바스는 빙하의 푸른 낯빛을 물 위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좁다란 눈길을 1㎞쯤 내려가자 이번엔 산중 호수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윽고 한참 아래 촐라 호수가 눈에 들어오고 그뒤 아마다블랑이 성채처럼 너른 팔을 두르고 트레커들을 향해 달려오는 듯했다.
그 넉넉함, 그 방대함은 결코 쉬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일행은 촐라패스의 장관을 찬양했다. 새벽 4시에 출발해 변변찮은 도시락으로 오후 2시에나 협곡을 빠져나와 기진한 상태였는데도 그 풍광의 넉넉함에 절로 웃음이 배어 났다.
●넉넉하고 방대한 촐라패스에 또 한번 감탄
칼라파타르로 통하는 로부제(4910m) 로지에 오후 5시를 넘겨서야 도착해 일행은 뻗어 버렸다. 루클라에 하루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빡빡해진 일정은 결국 칼라파타르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아쉬움이 남을 리 없었다. 촐라패스는 삶이 시드렁해질 때 고통과 환희, 벅찬 감동의 이중주를 어느 때고 들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르던 것과 반대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팡보체, 디보체, 텡보체란 곳의 불교 사원들을 돌아보며 에베레스트의 잔영을 음미했다. 어디에나 초모랑마가 있었다. 초모랑마가 구름에 가리거나 아득해지면 어김없이 아마다블람, 담세르쿠, 콩데가 마중나왔다. 설산이면 설산, 깎아지른 계곡이면 계곡, 석회수, 가을 단풍이 떠밀려 왔다. 하지만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트레커보다 몇 배나 무거운 짐을 진 포터들의 ‘나마스떼’(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뜻의 네팔 인사말) 와 환한 미소다.
히말라야 트레킹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 그래서 누구는 몽블랑을 오르는 이유를 끌어다 히말라야 오르는 의미를 정리했다.‘영원한 우주의 만물이 마음을 통해 흘러가는 곳’이라고.
고쿄·종라(네팔) 글ㆍ사진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인터넷 서울신문에 트레킹 일지와 동영상 연재
2008-10-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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