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밤 집에서 반쯤 누운 편안한 자세로 베이징올림픽 폐막식을 TV로 지켜보다 감전이라도 당한 듯 벌떡 일어나 앉고 말았다. 베이징시장이 다음 올림픽 개최지인 런던시의 시장에게 올림픽기를 넘겨준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무대에 영국의 여성가수가 등장하고, 그 옆에 선 머리 허연 기타리스트가 지미 페이지임을 알리는 자막이 뜬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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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원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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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원 수석 논설위원
사실 그 사내가 등장할 때만 해도 ‘아니 웬 지미 페이지?’하는 생각과 함께 저 노인네 여전히 활동하는구나라는 느낌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튀어나온 음악이 저 전설적인 노래, 레드 제플린의 ‘홀 로타 러브(Whole Lotta Love)’였던 것이다.
레드 제플린이 누구이고 ‘Whole Lotta Love’가 어떤 노래인가. 지미 페이지가 이끈 레드 제플린은,1960년대 말 영국에서 태동해 1970년대 서양 대중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하드록-요즘엔 헤비메탈이라고 부른다-의 창시자이자 그 정점에 선 그룹이다. 국내에서도 그들의 대표작 ‘스테어웨이 투 헤븐(Stairway To Heaven)’은 널리 사랑받는다. 하지만 레드 제플린은 본질적으로 마니아층이 추종하는 그룹이다. 그러니 1969년 발표한 그들의 출세작 ‘Whole Lotta Love’를 지금 기억하는 이들이 지구상에 몇 퍼센트나 될까.
올림픽은 물론 세계 최상급 운동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축제 한마당이다. 하지만 개최국 처지에서는 그것만으로 의미가 다하지 않는다.
개·폐회식을 통해 자국의 문화를, 특히 그 우수성을 인류에게 널리 알리는 홍보의 장(場)인 것이다. 이번 베이징올림픽 개막식만 해도 세계적으로 8억∼10억명이 TV로 지켜본 것으로 추산됐다.
그래서 중국은 개막식에서 종이·인쇄술·화약·나침반 등 ‘4대 발명품’을 비롯한 화려한 문화 전통을 최첨단 전자기술과 압도적인 인원을 동원해 과시했다. 그러나 그 장엄한 개·폐회식이 모든 사람들에게 경탄만을 불러일으킨 건 아니다. 도리어 ‘우리는 옛날부터 이렇게 훌륭했으니 제발 좀 알아줘.’라는, 콤플렉스의 한 형태로 본 이들이 적지 않았다.
반면 폐막식에서 영국이 내세운 런던올림픽 예고편의 아이콘은 세 가지였다. 이층버스와 축구선수 베컴, 그리고 ‘Whole Lotta Love’이다. 이층버스는 런던을 대표하는 명품의 하나이자, 어쩌면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의 자부심을 상징할 수 있겠다. 베컴은 두말할 나위 없이 현재 영국 스포츠를 대표하는 스타이고. 그러면 ‘Whole Lotta Love’는?
레드 제플린은 서양 대중음악사의 흐름에서 보면 비틀스의 조카뻘이자 퀸의 삼촌뻘쯤 되는 그룹이다. 대중성에 있어서는 같은 영국 출신인 비틀스·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레드 제플린의 노래를 굳이 택한 이유는 뭘까.“너희도 ‘Whole Lotta Love’ 정도는 알아야 하는 거 아냐.”라는 식의 오만함이 읽힌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우리가 지구촌 가족에게 무엇을 보여 주었는지 지금 딱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베이징올림픽 개·폐회식에서 드러난 중국과 영국의 ‘문화적 자기주장’에서 현대는 결국 문화전쟁의 시대임을 여실히 느끼게 된다. 올림픽 무대가 아니라도 한국은 인류를 향하여 어떤 문화적 메시지를 날리고 감동을 주려는가. 결코 쉽지 않은 ‘전쟁’에 우리는 직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