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축! 우리 사랑’서 첫 주연 맡은 김해숙

‘경축! 우리 사랑’서 첫 주연 맡은 김해숙

정서린 기자
입력 2008-04-05 00:00
수정 2008-04-05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국민 엄마 배우’ 김해숙(53)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영화 ‘무방비도시’에선 소매치기 대모로 면도날을 씹더니,‘경축!우리 사랑’(제작 아이비픽처스·9일 개봉)에서는 21살 연하남과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 캐릭터를 꿰찼다. 차기작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 뱀파이어와 불륜에 빠진 며느리의 시어머니로 출연한다. 안방극장의 온갖 채널들을 섭렵하며 팔색조 모성을 펼쳐온 중견배우 김해숙.‘어머니’의 익숙한 이미지를 호기롭게 털고 지천명이 넘어 스크린에서 파격적 캐릭터를 구사한 배우에겐 짙푸른 욕심이 돋아나고 있었다.

“저보고 산삼 먹냐고들 해요”

이미지 확대
김해숙
김해숙
1974년 MBC 공채 탤런트 4기로 연기에 입문한 그는 안방극장에 주로 머물렀다.1980∼90년대의 영화이력은 그래서 가난하다. 스크린에서 다시 그를 보기 시작한 것은 2002년 ‘가문의 영광’ 이후부터.

“저희 땐 드라마가 더 활성화돼 있었어요.‘벗는 영화’도 많았고요. 아이도 어리고 나이도 젊어 제약이 많았는데 지금은 달라졌죠. 드라마에서는 중견 배우가 폭발적인 열정을 보여 주기엔 한정된 역할이 많은데 영화로 와보니 우리도 앞장설 수 있는 캐릭터가 있더라고요.”

지난 1일 새벽 5시까지 드라마 촬영을 하고 그가 인터뷰 자리에 나왔다. 하루 일정을 묻자 가는 한숨부터 새어 나왔다.“사람들이 주위에서 물어본대요. 쟤는 뭘 먹냐고. 산삼 먹냐고.”(웃음)

드라마에 영화 일정이 겹치는 요즘 같은 때는 하루에 한두시간 눈을 붙인다. 뒤늦게 발동 걸린 연기사랑이 그에겐 원동력. 드라마는 시즌이 바뀔 때마다 6∼7편씩 제의가 들어오고, 영화 시나리오도 4∼5편씩 받아 두고 있지만 이번 영화는 ‘이유 있는 선택’이었다.

● “시나리오 받은건 3년 전… 한국판 ‘데미지´라고 생각했죠”

‘경축!우리 사랑’의 봉숙씨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엄마다. 노래방과 하숙집을 하는 중산층 가정. 남편(기주봉)은 동네 미용실 여자랑 바람이 났고, 백수 딸은 하숙하는 청년 구상(김영민)과 연애질이다. 퉁퉁 불어터진 얼굴로 엎어진 밥상처럼 너절한 일상을 이어가던 엄마 봉숙. 여기까지는 ‘왼발’로도 할 수 있을 익숙한 역할이다. 그를 사로잡은 건 이쯤해서 불쑥 틈입한 황당한 설정. 딸이 결혼하려던 애인을 두고 가출을 한다. 술에 취해 동네 전봇대에 토하는 청년을 엄마는 들쳐 업는다. 그런데 업힌 청년의 입김에서 그만 가슴이 떨리고 만다.

이미지 확대
“충격적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한번도 다뤄 보지 않은 소재였고, 시나리오를 받은 건 3년 전이라 ‘가족의 탄생’이 나오기도 전이었거든요. 발상 자체가 신선했죠. 한국판 ‘데미지’가 아닌가 싶었어요. 시나리오를 읽고는 바로 해볼 만한 역이다 생각했지요.”

그러나 그의 결심을 듣고 28·29살인 두 딸은 막 웃더란다.“엄마, 미쳤어?” 그런 반응에 더 오기가 났다. 하지만 문제는 촬영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딸들의 얘기를 듣고선 이게 보통 사람의 시선이라 생각하니 ‘아, 이제부터는 내 책임이구나.’ 싶었어요. 추한 욕정으로 비춰질까봐 굉장히 조심스러웠죠.”

촬영 중 그는 상대 배우 김영민을 15번이나 업었다. 온통 구토물로 얼룩진 옷을 벗기다 설렘을 느끼고, 사랑에 빠진 후에는 붕어빵을 사들고 청년의 손에 쥐어 준다. 아이스크림을 ‘너 한입, 나 한입’ 나눠 먹으며 봄바람결에 수줍게 웃어도 본다.“아이스크림 나눠 먹는 게 얼마나 닭살스럽고 웃겨요. 그렇지만 만약 지금 그런 사랑이 온다면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그러다 아기까지 가지는 봉순. 굳은살 배긴 아줌마의 얼굴에 평온한 미소가 번진다. 그때부터는 남편도 딸도 보이지 않는다. 봉순이 그렇게 필사적이었던 이유는 뭘까.

“굳이 딸과 연적이 되면서까지 아기를 지키려는 부분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봉순이를 생각해 보니 이 여자는 사랑보다도 자신이 여자라는 걸 잊고 있다가 그때 처음 여자라고 느낀 거였어요. 아이를 지키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것이었죠.”

● 박찬욱 감독 ‘박쥐’출연…“꿈에도 박쥐가 날아 다녀요”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세상 엄마들을 위한 응원가다. 구상은 남편의 사주를 받은 동네 아저씨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외친다.“저는 봉순씨를 사랑합니다.” 일순, 아저씨들 눈이 커진다. “뭐?봉순이가 누구야?” 웃음과 눈물이 뒤섞일 페이소스 넘치는 이 장면은 이름을 잃어 버린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요즘 세상이 변해서 여자들이 편해졌다곤 하지만 엄마들은 아직도 똑같아요. 가족, 아이들을 위해 사랑은 사치나 꿈인 채 살아 가잖아요. 여자이기를 포기하지 마세요. 영화 속 초반 봉순이처럼 사셨던 분들이라면 여자임을 다시 확인하세요.”

그는 두달 전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쥐’에 캐스팅됐다.

“원래 박 감독님의 팬이에요. 정말 존경하는 감독인데 캐스팅 소식에 멍해 있었더니 딸이 왜 그러냐고 묻대요. 그 박쥐가 내 박쥐가 될 줄은 몰랐지. 꿈에도 박쥐가 날아 다녀요.” 다시, 국민엄마로 돌아온 그의 웃음이 화사했다. 엄마의 파격은 대체 어디쯤에서 멈출까.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2008-04-05 1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