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원 수석 논설위원
BBK 수사결과가 나오면 네거티브 공세는 줄고 선거판이 정책대결로 방향을 바꾸지 않을까 하던 실낱같은 희망은 끊어졌다. 하긴 이같은 진흙탕 싸움에서 정책대결이란 언감생심 어울리지 않는 기대이다.
정책대결은 대통령 감이 여럿이라고 여길 때, 그들이 내건 가치를 구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놓고 비교·선택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처럼 후보 개인의 도덕성·능력 등이 근본적으로 의심받는 마당에서 말 몇마디(정책)로 그 우위성을 판단한다는 생각은 호사(豪奢)일 뿐이다. 결국 정책에 앞서 이를 시행하겠다는 사람에게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최악의 대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통령선거일이 열사흘 남은 지금 어떤 근거로든 지지 후보를 정해 놓은 사람은 일단 행복한 사람이다. 문제가 되는 건 아직도 37%(12월3일자 서울신문 보도)에 이른다는 부동층이다. 그 중에는 아예 투표를 포기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투표는 꼭 해야 한다. 우리사회의 민주주의 체제가 아직은 확고히 자리잡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과 한세대 전에 저 대한민국의 남녘 땅에서는 무고한 시민 수백 또는 수천명이 정부군 총칼에 희생당했다. 그 희생을 바탕으로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는 권리를 되찾은 지 20년 됐지만 그 사이에도 정권이 초래한 위기는 몇차례 더 있었다.10년 전 발생한 IMF 사태는 여태껏 그 후유증을 사회 곳곳에 남기고 있고, 지난 5년 세월에는 편가르기에 따른 반목·갈등이 더욱 심해졌다.
내 기본 인권을 보장받는 것도, 노력한 만큼 사회·경제적 보상을 받는 것도, 내 가족이 안정된 삶을 누리는 것도 정치가 잘돼야만 가능한 일이다. 현대사회에서 정치의 손길을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맘에 드는 후보가 없다고 투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최선·차선이 없으면 차악(次惡)이라도 뽑으라는 뜻이다.
그러러면 후보선택 기준을 스스로 정해야 한다. 그 기준은 각 후보의 과거 언행을 점검하는 일일 수 있다. 아니면 과거는 싹 무시하고 그가 앞으로 5년 무엇을 할 수 있나를 가늠해도 좋다. 후보가 정 싫으면 그가 속한 정당을 보고 투표하는 것 또한 방법이다. 차라리 이번 대선보다는 장기적 투자가치를 보고 후보 또는 정당을 선택해도 된다.
무슨 기준을 정하든 그건 유권자 개인의 몫이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국민이 무관심해서건 정치에 대한 혐오감에서건 투표를 포기하면 정치무대는 정상배들의 놀이터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정치 행위를 핑계삼아 법과 질서를 흐트러뜨리며 제 배나 채우는 자들에게 나와 가족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이번 대선이 비록 최악이라도 누군가는 대통령이 된다. 후보군 가운데 가장 나쁜 후보부터 하나씩 제외해 그나마 덜 나쁜 하나를 고르는 노력을 우리는 해야 한다. 남은 2주일이 앞으로 5년 우리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2007-12-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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