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열매가 꽃보다 아름다워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열매가 꽃보다 아름다워

입력 2007-11-10 00:00
수정 2007-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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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열매가 익는 계절이다. 수확의 계절이니 결실의 계절이니 하는 옛말들도 가을철에 식물이 열매를 익히는 습성에서 비롯된 말들이다. 꽃이 변해서 열매가 되는 것이니 꽃이나 열매는 생물학적으로는 유사한 기관이다. 이 두 기관을 생식(生殖)기관으로 분류하여 식물의 기관 중에서 자손번식에 관련된 것으로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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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열매를 맺는 것은 씨앗을 만들어서 자식을 퍼뜨리기 위해서다. 열매 속에 씨앗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열매와 씨앗을 구분하기 어려운 식물도 있다. 식물이 열매를 만들어 종족번식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사람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는데, 그 방식은 사뭇 다르다. 어미 근처에서 새끼가 잘 자라지 못하는 식물의 습성은 부모가 새끼를 보살펴 주어야 하는 우리들과는 다른 생태적 특징이다. 이미 뿌리를 튼튼하게 내린 어미가 어린 새끼보다 양분을 잘 흡수하고, 새끼가 어미 곁에서 자라면 어미 때문에 햇빛을 잘 받지 못한다. 이처럼 어미 근처에서 태어난 어린 새끼는 양분, 햇빛에 대한 경쟁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잘 자랄 수 없는 것이고, 이를 피하기 위해 식물들은 여러 방법으로 씨앗을 멀리 퍼뜨리려고 노력한다. 가능하면 어미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가서 그곳에서 싹을 틔워야만 경쟁 없이 잘 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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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가 어미에게서 멀리 달아나기 위해, 어미가 새끼를 멀리 보내기 위해 열매 단계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열매의 모습과 성질을 달리하는 것도 이런 노력 가운데 하나다. 열매 맛이 좋은 것, 크기가 특별하게 큰 것,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것, 냄새가 나는 것, 다른 물체에 달라붙는 것, 바람에 날 수 있게 우산털이 달린 것 등 열매나 씨앗이 보여주는 이 특별한 성질들은 모두 어미에게서 멀리 떠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열매나 씨앗들은 다른 동물에게 따 먹혀서, 동물의 털에 붙어서, 바람에 날려서 멀리멀리 이동할 수 있다.

화려한 빛깔과 모양으로 사람들 눈길을 사로잡는 가을 열매들이 있다. 몇몇 열매들은 바로 그 자리에 피었던 자신의 꽃보다 훨씬 예쁜 모습을 하고 있다. 보잘것없는 꽃을 피우는 식물 가운데도 가장 아름다운 꽃보다 더 예쁜 열매를 맺는 식물이 있는 것이다. 꽃과 열매의 모습은 서로 다른 게 보통이지만 그 달라지는 정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어서 놀랍다. 색깔이 화려하지 않고 모양도 볼품없었던 꽃에서 그토록 화려하고 예쁘고 커다란 열매가 달릴 수 있는지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다.

까치밥나무, 꼬리겨우살이, 노박덩굴, 작살나무, 죽절초, 참빗살나무, 호랑가시나무, 백당나무 등이 이런 유의 나무들이다.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꽃차례 가장자리에만 커다란 가짜 꽃을 피우는 백당나무를 제외하면, 어느 것 하나 꽃다운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들이다. 눈에 띄지 않는 녹색이거나 흰빛이 도는 노란색 같은 꽃을 피울 뿐이다. 백당나무도 열매가 되는 꽃차례 가운데 꽃들은 눈길을 끌 만큼 예쁘지가 않다. 이런 식물들이 어찌나 화려한 색깔의 열매를 맺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들 가운데는 잎이 지고 난 후에도 영롱한 빛깔로 가지에 매달려 늦가을 정취를 더해주는 것이 많다.



시작은 작고 보잘것없지만 끝은 화려한 이런 열매들을 볼 때마다 사람들 인생 역정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작보다 결과가 더 장대한 것, 우리네 인생뿐만 아니라 생태계 속에서도 그런 결실이 더욱 아름답고 위대해 보인다.
2007-11-1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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