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화려한 휴가

[영화리뷰] 화려한 휴가

박상숙 기자
입력 2007-07-14 00:00
수정 2007-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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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생생하게 재현… 역사적 고민 아쉽다

1980년 5월18일 오후 3시.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발포가 시작됐다. 이제 곧 계엄군이 물러갈 것이라는 말만 믿고 기쁨에 차 전남도청 앞에 몰려든 시민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총탄에 혼비백산한다. 군인들의 총탄에 시민들의 살이 터지고 거리는 피로 물든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은 먹먹해져 온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애국가와 함께 극장 안을 메운다.

영화 ‘화려한 휴가’의 미덕은 ‘5월 광주’의 참혹한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점이다. 폭도로 몰린 시민들이 계엄군에게 무참히 짓밟히는 그 장면에서, 이렇게 객석에 편하게 앉아서 봐도 되나 할 정도로 민망해진다. 애국가가 이렇게 슬프게 들렸던 적이 있었을까. 그간 영화 ‘꽃잎’‘박하사탕’, 드라마 ‘모래시계’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다뤄진 5·18이 ‘화려한 휴가’를 통해 정면으로 드러난다.

영화는 처절했던 광주의 열흘을 소시민의 삶을 통해 풀어냈다. 계엄군에 맞서 시민군에 참여한 사람들은 독재정권에 의해 ‘폭도’로 몰렸지만 모두 눈앞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택시기사로 일하는 순박한 청년 민우(김상경)처럼. 부모를 일찍 여읜 그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 진우(이준기)가 계엄군의 총칼 아래 희생 당하자 시대의 비극에 정면으로 맞서게 된다.

‘생생한 재현’만으로 점수를 준다면 ‘화려한 휴가’는 분명 100점짜리다.5·18에 관한 기록용 필름이 대형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진 듯하다. 제작비 100억원 중에서 30억원을 광주 금남로를 재현하는데 썼을 만큼 김지훈 감독은 철저한 고증에 심혈을 기울였다.5·18을 전혀 모르는 요즘 세대들에게는 ‘살아있는 교과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만하다.

하지만 영화가 그려낸 참혹한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과연 영화가 주는 감동인지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5·18이라는 소재에 많이 빚져 있다. 그런 만큼 아쉬움이 더욱 크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리고자 한 시도는 좋지만 역사적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려는 고민은 부족해 보인다.

우선 인물들의 성격이나 갈등 구조가 판에 박인 듯 전형적이며 전개 또한 평면적이다.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간간이 삽입한 유머는 다소 과장돼 거슬리기도 한다.

진지함을 강조하기 위했다고는 하지만 주요 배역들이 표준말을 사용하는 것도 사람들의 편견을 고착화하고 인물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5·18을 정면으로 다뤘다는 미덕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5·18’이 선사할 서늘한 충격을 기대한 관객들이라면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겠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2007-07-1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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