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은 것만 헤아리기
글 송정림 소설가, 방송작가KBS TV 소설 <너와 나의 노래> <약속> 등의 드라마와 <출발 FM과 함께> 등의 방송, 그리고 작품집 《슬픔이 아름다울 때》 《라디오 러브스토리》 등과 단상집 《마음풍경》과 자녀교육서 《아이가 자라는 동안 꼭 해줘야 할 46가지, 성장 비타민》을 펴냈다.
하얗게 망각한 이름 하나가 차가운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와 내 가슴에 박힌다,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친구 하나가 거리를 가로질러 달려와 내 어깨를 감싼다, 절대 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용서 하나가 거리를 달려와 내 손등을 어루만진다…. 한 해가 뒷모습을 보이는 요즘은 주의하시라,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환상, 착오, 오해, 상상….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한 해를 살아온 나를 위로해 주는 따뜻한 착각이 아닐까.
언제나 한 해를 돌아보면 단어 하나가 풍선처럼 솟아오른다. 다사다난! 올해라고 다를까. 나라고 다를까. 일도 많고 탈도 많고 그런 만큼 많이 배웠고 많이 깨달았고 많이 컸다(늙었다는 표현은 싫다. 죽는 순간까지 사람은 큰다).
그런데 아주 행복한 사건 하나가 있었다. 다른 안 좋은 일은 다 잊어버리게 즐거운 사건이다. 아들 재형이와 함께 책을 냈고 그 책이 뜻밖에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냥 추억 하나 만들자고 한 일인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다. 세상일이 그런 것 같다. 이건 꼭 잘 돼야돼, 어깨에 힘주면 잘 안 되고 그냥 즐겁게 하자, 힘 풀면 그 일은 잘 된다. 제품디자이너가 꿈인 고등학생 아들이 삽화를 그리고 내가 아이를 기르는 동안 느낀 점을 쓴 책 《아이가 자라는 동안 꼭 해줘야 할 46가지, 성장 비타민》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것만으로 한 해의 캘린더가 온통 푸른색으로 색칠이 된다.
그것뿐인가. 올 한 해 얻은 것은 수도 없이 많다. 아들 재형이 키가 더 자랐고, 그 애 마음이 더 자랐으며, 시험공부다 뭐다 하는 동안 그 애의 지식이 늘었고, 밤새는 엄마에게 타주는 커피 맛이 더 향상되었으며, 그 애 친구가 더 늘었고, 성격 아직 안 버리고 대한민국 고교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올 한 해 얼마나 감사해야 하랴.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땅에 엎드려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한다. 게다가 부모님이 건강하시고 남편이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으며 형제자매들이 응원해 주는데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또 올 한 해가 보람찼노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일일 아침 방송(KBS 1FM <출발 FM과 함께>) 원고 쓰는 일을 하루도 펑크 내지 않고 무사히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내가 아주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증거다.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고 즐겁지 않으면 못하는 일이고 팀웍이 좋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해피하고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었으니 입이 천 개 만 개 있어도 그 고마움 다 말할 수 없다.
또, 친구들이 곁에 있고, 새롭게 좋은 사람들을 알았고,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용서했고,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었으니 올 한 해도 나는 대박을 친 셈이다. 통장 잔고는 비었어도 마음의 창고에는 수확물이 가득하니 올해도 남는 장사한 것이다.
리차드 바크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자기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볼 때 가장 가치 있는 단 하나의 질문은 ‘나는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에밀리 디킨슨도 “아픈 마음 하나 달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게 아니리”라고 노래했다.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 사랑을 위해 온 마음을 다했다면 올해도 보람찼노라, 자랑해도 된다.
잃은 것 헤아리면 끝이 없다. 나 역시 가슴 아픈 상실이 왜 없었을까. 그러나 잃은 것은 헤아리지 않는다. 얻은 것 헤아려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인생 셈법이다. 흰 머리카락만 세지 말고 사람을 세고, 몸무게만 달지 말고 마음무게를 달아본다면 올 한 해도 누구에게나 대박이다.
한 해가 뒷모습을 보인다. 이제 남은 일은 사랑의 힘으로 한 해를 추억하는 일, 그리고 역시 사랑의 힘으로 새해를 꿈꾸는 일이 아닐까.
월간 <삶과꿈> 2006.12 구독문의:02-319-3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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