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랄리벨라(Lalibella) 기행 ① 아프리카의 예루살렘

(17) 랄리벨라(Lalibella) 기행 ① 아프리카의 예루살렘

입력 2007-01-31 00:00
수정 2007-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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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리벨라(Lalibella)에 오기 전에 세상에 이런 곳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그런 곳이 있었던 것이다. 커다란 암반 한 장을 위에서부터 때리고 쪼아 내려가면서 교회를 만들었다? 상상이 가는가. 그것도 교회 하나가 아니라 교회군(群)이라는 표현을 써야 할 만큼 그 수가 많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랄리벨라가 바로 그 곳이다. 역사적으로는 로하(Roha)라고 불렸다. 도심(한국의 도심을 상상하면 곤란하다.)이 한국의 조그만 시골 보다 못한 이곳 랄리벨라지만 에피오피아 사람들에게는 제2의 예루살렘이라고 부르는 성지이다. 무슬림들이 살아 생전 꼭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 ‘메카’이듯이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은 살아 있는 동안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그런 곳이 랄리벨라로 순례지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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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숨 양식으로 만들어진 암굴교회 창틀. 악숨 왕조의 힘이 다해 랄리벨라로 천도했다지만 암굴교회의 창틀에, 혹은 기둥에 여전히 악숨 왕조는 살아 있었다. 북부 도시 악숨에 가면 악숨 왕조는 현재까지도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악숨 양식으로 만들어진 암굴교회 창틀. 악숨 왕조의 힘이 다해 랄리벨라로 천도했다지만 암굴교회의 창틀에, 혹은 기둥에 여전히 악숨 왕조는 살아 있었다. 북부 도시 악숨에 가면 악숨 왕조는 현재까지도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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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다의 집’으로 부르는 랄리벨라의 공동 묘지.
‘골고다의 집’으로 부르는 랄리벨라의 공동 묘지.


아디스 아바바에서 동쪽으로 약 500km 떨어져 있고, 비행기로는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공항에서 도심까지의 거리가 꽤 된다. 택시로는 30분 정도. 굽이굽이 가는 길목에 보이는 전경들이 장관이다. 차로도 쉽지 않은 곳인데 노새를 타고 가는 사람들, 심지어 걸어가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평균해발고도가 2,300m가 넘는 아디스 아바바에서 지내면서 어느 정도 고산지대 생활에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랄리벨라는 그곳 보다 훨씬 더 높은 3,000m나 되는 곳이었다. 일주일을 머물렀는데 높이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머무는 내내 호흡이 불편했다.

AD 1세기부터 세력을 떨쳤던 악숨(Axum) 왕조의 힘이 쇠락하자 그 뒤를 이어 12세기초 자그웨 왕조가 발흥했다. 자그웨 왕조의 가장 탁월한 군주였던 랄리벨라(12세기말~13세기초 재위)는 수도를 악숨에서 라스타 지방의 로하(Roha)로 천도했고 기존의 지명을 로하가 아닌 랄리벨라로 바꾸었다. 이후 로하는 약 300년 간 자그웨 왕조의 수도가 된다. 랄리벨라 왕은 성지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점령되어 순례가 어려워지자 로하에 제2의 예루살렘 건설을 시도한다. 랄리벨라에 ‘요르단강’이나 ‘골고다의 집’ 등 예루살렘을 본뜬 이름이 존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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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요르단 강으로 명명되었던 골짜기로, 나무 아래에 살짝 보이는 십자가는 예수가 세례를 받았던 장소를 표시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요르단 강으로 명명되었던 골짜기로, 나무 아래에 살짝 보이는 십자가는 예수가 세례를 받았던 장소를 표시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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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누엘 교회 안내 표지판. 현재는 보수공사 중이라 거대한 돌 하나로 이루어진 암굴교회를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지만 그림을 보면 커다란 암반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쪼아 내려가면서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엠마누엘 교회 안내 표지판. 현재는 보수공사 중이라 거대한 돌 하나로 이루어진 암굴교회를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지만 그림을 보면 커다란 암반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쪼아 내려가면서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왕은 어느 날 꿈에서 “로하에 ‘제2의 예루살렘’을 건설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는다. 그는 그 일을 위해 당장 로하로 수도를 옮기고 팔레스티나와 이집트 기술자들을 동원해 교회 건설에 들어간다.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는 강은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은 곳만큼이나 성스러운 곳이라 하여 ‘요르단강’이라 명명되었고, 요르단강을 사이에 두고 그 북쪽과 남쪽에 각각 5개,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다 또 하나를 지어 모두 11개의 교회가 완성되었다.

교회는 무려 120여 년에 걸쳐 지어졌는데 랄리벨라 왕 사후에도 작업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교회 건설에 시간이 많이 걸린 이유는 랄리벨라가 해발 3000m의 고지대이고 암반을 파내 그 속에 지하 교회를 세워야 하는 일이 아주 고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하나의 암반을 쪼아 만들어진 이 암굴교회군은 악숨양식을 계승했고, 실제로 보면 그 규모에 압도당하지만 무척이나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교회군은 전체가 다 지하에 있는데 현대의 건축기술로도 어떻게 그런 건물이 지어질 수 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랄리벨라의 암굴교회군은 1978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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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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