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개와 함께 있을때

[시론] 개와 함께 있을때

입력 2007-01-20 00:00
수정 2007-01-2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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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한국인은 더욱 인간다워진다

글 최정호 한양대 겸임교수, 경영학 박사, 《CEO여, 문화코드를 읽어라》 저자

한 분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도둑이 들려면 개도 안 짖는다.”

이어서 다음 분이 말했습니다. “도둑이 주인이면 개가 주인보고 안 짖는다고 한다.”

또 다른 분은 “성대나 고막을 제거하면 개가 짖지 못한다고 한다. 듣지 못하면 짖지 못한다.” 또 다른 분은 “개가 안 짖는 경우는 딱 한 번인데 바로 먹을 것이 있을 때다. 국민을 위해 지켜야 할 길목 군데군데 개들이 먹을 게 너무 많아 절대 안 짖는다.” 또 다른 분은 “저도 열심히 짖었는데, 묵살됐다. 안방 애완견만 짖지 않은 것이다.” 또 다른 분은 “개가 되더라도 짖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이솝우화 같은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입은 피해를 생각해 봤다. 나는 두 달 전에 표지에 문화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책을 냈다. 그러고 나서 조금 있다가 신문을 보니 문화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부처와 무슨 위원회가 성인 오락실을 통하여 전국을 도박장화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기사가 떴다. 책 출간을 한 달 만 늦췄더라면 틀림없이 책의 타이틀을 바꿨을 것이다. 때묻은 문화라는 단어가 안쓰러워서일 것이다.

또 이 책 속표지에 ‘개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더욱 인간다워진다‘ 라는 문구를 넣었었다. 그리고 그 밑에 후버트 리스(1802~1886), 독일 작곡가라고 적었었다. 문화라는 고상한 단어가 들어가는 타이틀을 가진 책에 중간 표제지이긴 하지만 하필 개라는 상스러운 이미지를 넣어서 좋을 게 없잖은가 하고 생각해 보았었다. 그러나 그냥 넣기로 하였었다. 본문과 연관된 연상작용을 노린 것이긴 하지만 어느 독일 비즈니스맨이 일러 준 말이 생각나서였다. 이 살벌한 산업사회에서 인간은 점점 더 살벌해지고 인간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부모자식 간에도 불신이 커지고 부부간에도 목을 조르는 기사가 난다. 친구가 친구를 배신하고 이웃끼리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도 인사가 없다. 인사했다가 무슨 손해를 볼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겠는가.

후버트 리스(Hubert Ries)가 말한 것처럼 개와 같이 있으면 될 것이 아닌가. 동양의 어느 지역에서처럼 개를 잡아먹지 말고 말이다. 그런데 독일인 비즈니스맨은 그 다음 단계의 설명을 하지 않았었다. 개와 같은 동물과 더불어 있으면 그 순진함에 순화되어 인간의 교활함이 없어진다는 것인가, 아니면 개와 같은 하등동물을 거느리면서 인간의 우월성을 깨닫고 더욱 고상해진다는 것인가.

개를 성선설로 보느냐 성악설로 보느냐의 원인 규명이 안 된 화두였었다. 그러나 리스의 말이 옳다면 어느 쪽이든 인간은 더욱 고상해지려면 개는 필요하다. 한국인들도 인간이다. 다행이도 우리에게는 개가 있다. 나아가 개 같은 조직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후버트 리스가 100여 년 전에 갈파해준 대로 개와 더불어 한국인들은 인간성을 회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개 같은 조직을 쳐다보며 무언가 올바로 깨닫고 다음 행동을 한다면 말이다.

잠깐,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최준 시인의 시집을 보고 정말 놀랐다. 1991년에 초판이 발간된 이 시집의 제목이 바로 개였다. 개를 주제로 한 시가 70편이 넘도록 수록되어 있는 개 시리즈의 결정판이었던 것이다. 제목 중에는 <나는 개를 키워온 게 아닌가>라는 것이 왜 그런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 그렇다면 이번 개 시리즈 파동을 일으킨 염력은 내가 아니라 바로 최 시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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