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두 사내와 한 계집이 화목하게 동거하고 있다구요!”
중국 대륙에 70대와 60대 남자 두 명과 한 여자가 지난 30년 동안을 함께 동거를 하면서 각각 남자로부터 자녀를 낳아 기르며 함께 오순도순 생활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동남부 장시(江西)성 징더전(景德鎭)시 왕베이리(旺北里)촌에 사는 한 60대 여성은 40년 전 이웃 마을에 사는 남성과 결혼한 뒤 자녀 4명을 낳은 데 이어,생활이 너무 어려워지자 30년전 또다른 남성과 결혼해 ‘이부일처(二夫一妻)’라는 기묘한 동거를 하면서 또다시 딸 2명을 낳아 오순도순 한가족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강남도시보(江南都市報)가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화제의 ‘이부일처’가족은 ‘일처’인 화(華·여·65)모씨와 ‘이부’인 청(程·74)모씨와 천(陳·67)모씨이다.왕베이리촌 주민 쉬(徐)모씨는 “이 얘기는 너무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며,그 집안 식구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특히 이부일처의 기묘한 동거를 해온 지난 30년간 이들 부부 세 사람이 얼굴 한번 붉히는 일이 없을 정도로 화목하다.”고 말했다.
‘일처’화씨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능력도 뛰어난 데다 무남독녀인 까닭에 그녀의 아버지가 데릴사위를 들일 작정이었다.당시 남자들은 처가의 데릴사위로 들어가면 너무 유약하다는 인상을 주는 탓에 매우 꺼렸다.
화씨는 워낙 모든 면에서 출중한 덕분에 이웃 마을에 사는 청씨가 데릴사위로 들어올 것을 약속하고 그와 결혼했다.그것이 지금부터 40년전인 1966년의 일이었다.두 사람은 곧바로 혼인신고를 하고 달콤한 신혼생활에 들어갔다.
결혼한지 10년,이들 부부는 2남1녀를 두었다.하지만 청씨가 눈이 아주 나빠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해 이들의 터수는 나날이 악화됐다(그는 생산대대에 근무했는데,당시 생산대대는 실적이 부진하면 돈을 적게 받는 성과급 형태로 운용됐다).
특히 이때는 중국 사회를 수십년을 퇴보시킨 것으로 유명한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는 시기인 탓에 생산력이 크게 낙후해 식량 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회 전체가 너무 어려운 시기였지만,총명한 화씨는 집의 터앝에다 야채를 심어 석탄 공장 식당에 내다팔아 생활비에 보태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었다.그같은 생활도 한계가 왔다.결혼한지 10년이 지나 아이들이 크면서 씀씀이도 늘어난 까닭이다.결국 생산대대에 수백위안(약 수만원·당시는 천문학적으로 큰 돈·신문주(註))을 빚지게 됐다.
당시 이웃 마을에 천씨가 살고 있었다.반지빠른 천씨는 생산대대 일이 끝나면 ‘알바’로 구멍가게를 열어 짭짤하게 돈을 벌고 있었다.미혼인 그는 어느날 화씨를 찾아와 당신 부부와 자녀 3명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잘돌봐줄테니 결혼해달라고 프로포즈를 했다.
처음에는 화씨 부부가 완강히 반대했다.이에 굴하지 않고 천씨는 여러번 화씨 집을 찾아가 “당신 부부가 이혼할 필요도 없으며 집안을 꾸려나가는데 경제력은 나 혼자 벌어도 충분히 잘 살수 있다.”며 간곡히 설득했다.
천씨의 간곡하고도 집요한 요청과 자녀의 장래를 위해 이들 부부는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해서 이들 3명은 ‘이부일처’라는 기묘한 동거에 들어갔다.처음에는 이들의 사이가 서먹서먹하기도 했으나,천씨가 워낙 성실하고 살가운 태도를 보여 곧 사이가 좋아지고 애옥살이 터수도 나날이 좋아졌다.
특히 화씨는 두 남편에게 한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로 공평하게 대했고,천씨는 청씨 자녀의 학비를 대주는 것은 물론 자신의 아이처럼 곰살맞게 대해 집안 분위기는 항상 화목함 그 자체였다.
이 덕분에 ‘이부일처’의 동거생활에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 청씨는 막내 아들을 낳았고,이어 천씨도 두 딸을 낳아 9명의 한 집에서 오순도순 생활해왔다.이제는 장성한 아들과 딸 3명은 분가를 하는 바람에 식구 수는 줄어들었다.
지난달 24일 오후,기자가 화씨 집을 찾았다.화씨는 60대 중반이라는 나이와는 달리 키가 크고 말도 시원시원하고 활달하게 했다.하지만 ‘이부일처’를 하게 된 이유를 묻자,화씨는 화를 버럭 내며 “우리 집안의 일이다.다른 사람들이 신경 쓸일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천씨는 지난 30년 동안 집안의 화평을 위해 헌신을 하고 있지만,아직까지 화씨와 정식 부부는 아니다.혼인신고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천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정식 부부는 아니지만,화씨가 인정하고 자녀들이 인정하고 있는 만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부일처’의 기묘한 동거는 멀지 않아 끝날 지도 모른다.기자가 취재를 마치고 집을 나설 때 청씨는 “화씨와 이혼수속를 밟을 예정”이라며 “지난 30년동안 천씨가 명실상부한 남편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힘없이 말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중국 대륙에 70대와 60대 남자 두 명과 한 여자가 지난 30년 동안을 함께 동거를 하면서 각각 남자로부터 자녀를 낳아 기르며 함께 오순도순 생활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동남부 장시(江西)성 징더전(景德鎭)시 왕베이리(旺北里)촌에 사는 한 60대 여성은 40년 전 이웃 마을에 사는 남성과 결혼한 뒤 자녀 4명을 낳은 데 이어,생활이 너무 어려워지자 30년전 또다른 남성과 결혼해 ‘이부일처(二夫一妻)’라는 기묘한 동거를 하면서 또다시 딸 2명을 낳아 오순도순 한가족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강남도시보(江南都市報)가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화제의 ‘이부일처’가족은 ‘일처’인 화(華·여·65)모씨와 ‘이부’인 청(程·74)모씨와 천(陳·67)모씨이다.왕베이리촌 주민 쉬(徐)모씨는 “이 얘기는 너무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며,그 집안 식구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특히 이부일처의 기묘한 동거를 해온 지난 30년간 이들 부부 세 사람이 얼굴 한번 붉히는 일이 없을 정도로 화목하다.”고 말했다.
‘일처’화씨는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능력도 뛰어난 데다 무남독녀인 까닭에 그녀의 아버지가 데릴사위를 들일 작정이었다.당시 남자들은 처가의 데릴사위로 들어가면 너무 유약하다는 인상을 주는 탓에 매우 꺼렸다.
화씨는 워낙 모든 면에서 출중한 덕분에 이웃 마을에 사는 청씨가 데릴사위로 들어올 것을 약속하고 그와 결혼했다.그것이 지금부터 40년전인 1966년의 일이었다.두 사람은 곧바로 혼인신고를 하고 달콤한 신혼생활에 들어갔다.
결혼한지 10년,이들 부부는 2남1녀를 두었다.하지만 청씨가 눈이 아주 나빠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해 이들의 터수는 나날이 악화됐다(그는 생산대대에 근무했는데,당시 생산대대는 실적이 부진하면 돈을 적게 받는 성과급 형태로 운용됐다).
특히 이때는 중국 사회를 수십년을 퇴보시킨 것으로 유명한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는 시기인 탓에 생산력이 크게 낙후해 식량 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회 전체가 너무 어려운 시기였지만,총명한 화씨는 집의 터앝에다 야채를 심어 석탄 공장 식당에 내다팔아 생활비에 보태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었다.그같은 생활도 한계가 왔다.결혼한지 10년이 지나 아이들이 크면서 씀씀이도 늘어난 까닭이다.결국 생산대대에 수백위안(약 수만원·당시는 천문학적으로 큰 돈·신문주(註))을 빚지게 됐다.
당시 이웃 마을에 천씨가 살고 있었다.반지빠른 천씨는 생산대대 일이 끝나면 ‘알바’로 구멍가게를 열어 짭짤하게 돈을 벌고 있었다.미혼인 그는 어느날 화씨를 찾아와 당신 부부와 자녀 3명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잘돌봐줄테니 결혼해달라고 프로포즈를 했다.
처음에는 화씨 부부가 완강히 반대했다.이에 굴하지 않고 천씨는 여러번 화씨 집을 찾아가 “당신 부부가 이혼할 필요도 없으며 집안을 꾸려나가는데 경제력은 나 혼자 벌어도 충분히 잘 살수 있다.”며 간곡히 설득했다.
천씨의 간곡하고도 집요한 요청과 자녀의 장래를 위해 이들 부부는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해서 이들 3명은 ‘이부일처’라는 기묘한 동거에 들어갔다.처음에는 이들의 사이가 서먹서먹하기도 했으나,천씨가 워낙 성실하고 살가운 태도를 보여 곧 사이가 좋아지고 애옥살이 터수도 나날이 좋아졌다.
특히 화씨는 두 남편에게 한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로 공평하게 대했고,천씨는 청씨 자녀의 학비를 대주는 것은 물론 자신의 아이처럼 곰살맞게 대해 집안 분위기는 항상 화목함 그 자체였다.
이 덕분에 ‘이부일처’의 동거생활에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 청씨는 막내 아들을 낳았고,이어 천씨도 두 딸을 낳아 9명의 한 집에서 오순도순 생활해왔다.이제는 장성한 아들과 딸 3명은 분가를 하는 바람에 식구 수는 줄어들었다.
지난달 24일 오후,기자가 화씨 집을 찾았다.화씨는 60대 중반이라는 나이와는 달리 키가 크고 말도 시원시원하고 활달하게 했다.하지만 ‘이부일처’를 하게 된 이유를 묻자,화씨는 화를 버럭 내며 “우리 집안의 일이다.다른 사람들이 신경 쓸일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천씨는 지난 30년 동안 집안의 화평을 위해 헌신을 하고 있지만,아직까지 화씨와 정식 부부는 아니다.혼인신고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천씨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정식 부부는 아니지만,화씨가 인정하고 자녀들이 인정하고 있는 만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부일처’의 기묘한 동거는 멀지 않아 끝날 지도 모른다.기자가 취재를 마치고 집을 나설 때 청씨는 “화씨와 이혼수속를 밟을 예정”이라며 “지난 30년동안 천씨가 명실상부한 남편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힘없이 말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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