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755)-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12)

儒林(755)-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12)

입력 2006-12-14 00:00
수정 2006-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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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부 理氣互發說

제4장 儒林(12)


그러나 청나라의 강희(康熙) 연간에 이 나무는 벼락을 맞고 타죽어 버렸으므로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비석과 정자를 세운 것이었다.

자공(子貢).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특히 외교활동이 뛰어나 살아 생전에 스승보다 더 유능하고 뛰어난 인물이라고 평가를 받았던 자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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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공자로부터도 ‘자공은 천명대로만 살지 않고 재산을 불렸고, 그의 예측은 거의 적중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던 뛰어난 정치가이자 재산가였던 자공은 그러나 이러한 외교활동으로 스승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였다.

스승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였다는 자책감으로 자공은 6년 동안이나 공자의 무덤 곁에서 여막을 치고 묘를 지켰던 것이다. 이에 대해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공자는 노나라의 도성 북쪽 사수가에 매장되었다. 제자들은 모두 3년간 상을 입었다. 또 3년간의 심상을 끝내고서도 서로 이별하려 할 때에는 소리 내어 울었다. 어떤 제자들은 그대로 머물기도 하였다. 자공은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6년이 지난 후에야 물러났다. 제자들이나 노나라 사람으로서 집을 공자의 무덤 곁으로 옮긴 것이 100여가가 되어 이곳을 공리(孔里)라고 불렀다.”

고향으로 돌아와 죽을 때까지 5년 동안 공자는 육경을 제자들과 함께 스스로 편찬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쉬지 않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것이다. 공자를 만세사표(萬世師表)라고 부르는 것은 이처럼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갈고 닦아 알게 된 사람(好古敏以求之者)’으로서 ‘옛것을 잘 습득하여 새로운 것을 알아낸 진리(溫故而知新)’를 책으로 펴냈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펼쳐 마침내 전 인류의 스승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공자는 지금도 남아있는 행단(杏壇) 근처에서 끊임없이 제자들을 가르쳤다.

‘공자는 제자들을 시(詩), 서(書), 예(禮), 악(樂)을 가지고 가르쳤다.’고 사기는 기록하고 있는데, 제자들의 숫자는 3000명으로 추정되며, 육예(六藝)에 능통했던 제자들만 해도 72명이나 되었다고 사마천은 증언하고 있다. 물론 공자는 평생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공자가 집중해서 제자들을 가르친 것은 68세의 나이로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부터였던 것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공자의 가르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공자는 네 가지 방법으로 제자들을 교화하였다. 즉 문(文:학문을 배워 인륜도덕의 이치를 밝힘), 행(行:자신의 행실을 닦음), 충(忠:자기의 마음을 다함), 신(信:언어가 신실하여 행동과 일치함)이다.

공자는 인격적으로 분석해볼 때 다음의 네 가지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즉 사의(私意)가 없었고, 기필코 무엇을 이루겠다는 의욕도 없었으며,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자아를 버려 손쉽게 남을 따르려 하는 점도 없었다.

공자가 특히 삼간 점이 있었는데, 제(齊:제사를 드리기 앞에 근신하는 일), 전쟁, 질병이 그것이다.

공자는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이(利)를 말하기도 했으며, 그러나 이를 말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천명(天命)과 인(仁)을 더불어서 말했다.…”
2006-12-1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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